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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로마서

로마서 7장 :19-25

by 갈렙과 함께 2024. 5. 23.

로마서 7장 :19-25

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20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Romans 7 19-25

19 For what I do is not the good I want to do; no, the evil I do not want to do-this I keep on doing.

20 Now if I do what I do not want to do, it is no longer I who do it, but it is sin living in me that does it.

21 So I find this law at work: When I want to do good, evil is right there with me.

22 For in my inner being I delight in God's law;

23 but I see another law at work in the members of my body, waging war against the law of my mind and making me a prisoner of the law of sin at work within my members.

24 What a wretched man I am! Who will rescue me from this body of death?

25 Thanks be to God-through Jesus Christ our Lord! So then, I myself in my mind am a slave to God's law, but in the sinful nature a slave to the law of s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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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7장 :19-25

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19 For what I do is not the good I want to do; no, the evil I do not want to do-this I keep on doing.

15-18절의 내용을 요약하여 말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앞서 말했던 내용을 반복하여 말하고, 앞서 고백한 신앙적인 딜레마(dilemma)를 성도들이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를 앞으로  말하고자 합니다. 

 

20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20 Now if I do what I do not want to do, it is no longer I who do it, but it is sin living in me that does it.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이 내용은 17절의 내용을 반복하여 말한 것이지만, 바울이 유도해 내는 내용은 서로 다른 것입니다. 

16절, 17절에서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라고 율법의 선함에 대한 결론을 말했습니다. 본절에서는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라고 말하기 때문에, 죄를 짓는 우리의 현실을 합리화 시키는 근거로 사용될 수도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바는, 성도가 극복해야 할 신앙적 현실이 무엇인지 알아야 된다는 차원에서 본 구절을 언급했습니다. 그러니 본 구절을 사용하여 자신의 죄를 합리화 시키려고 시도하지 말아야 됩니다.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1 So I find this law at work: When I want to do good, evil is right there with me.

  ‘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바울은 일반적으로 ‘법’이라는 단어는 율법에 대해 말할 때도 사용해왔습니다. 본절에서 말하는 ‘법’은 하나님의 법과 죄의 법이 우리 몸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대립의 원리를 의미합니다. 19절에서 바울은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라고 선을 행하고자 하는 자신의 의지와는 반대로 악을 행하는자신의 모순된 행위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본절에서는 그런 모순된 행위가 발생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그 이유는 자신 속에 선을 행하는 의지와 함께 악이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설명을 통해서 바울은 악이 외부적인 어떤 요인이 아니라 사람 내부에 존재하는 실체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악은 인간 내부에서 잠잠히 있지 않고 항상 인간의 모든 지체를 지배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2 For in my inner being I delight in God's law;

  ‘내 속사람으로는’

속사람이 23절과 25절의 ‘마음’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을 지라도, 그것은 윤리적인 구분을 위한 것이고 인간의 실체를 구분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본절에서는 윤리적인 면에서 속사람을 단순히 선을 행하고자 하는 자아로 라고 정하고, 악을 행하는 다른 자아와 구별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 하나님의 법을 ‘

  대부분의 학자들은’ 하나님의 법’을 ‘율법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바울이 말하려고 하는 ‘하나님의  법’은 속사람이 가지고 있는 ‘선을 행하고자 하는 의지’를 일으키는  ‘거룩한 원리나 힘’에 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법’을 ‘율법’ 이나 ‘계명’을 모두 포괄하는 ‘ 거룩한 원리’하고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3 but I see another law at work in the members of my body, waging war against the law of my mind and making me a prisoner of the law of sin at work within my members.

  ‘내 지체 속에서’ 

‘지체’는 육신을 말합니다. 이 지체는 단순히 몸의 각 부분을 의미하려는 것이 아니라, 죄와 대항하기에 전혀 무기력하며, 죄로 인해 사망의 형벌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죄의 몸’ 각 부분을 말합니다. 그 ‘지체 ‘ 자체가 ‘육신’처럼 악한 것은 아니지만, 죄가 연약한 육신의 지체를 통해서 역사하기 때문에 ‘지체’는 불의의 병기로 사용됩니다. (6:13)

그러나, 하나님께 드려야 마땅한 우리의 지체는, 성령의 인도함을 받음으로, 의의 병기로서 하나님을 위해 사용될 수있습니다.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한 다른 법’을 ‘마음의 법’ 과 대조하여 설명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살려고 하는 선한 의지의 ‘마음의 법’  과 ‘ 한 다른 법’이 투쟁관계에 있습니다. ‘마음의 법’은 마음 자체에서 일어나는 ‘법’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위해 살려고 하는 의지를 선한 양심 안에 일으킴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성도 안에서  다른 법과 마음의 법 이 두가지 법이 서로 지배력을 행사하려고 투쟁하고 있기에 성도는 자신도 모르게 갈등 안에 놓이게 됩니다.  바울이 본절에서 성도의 마음 가운데서 일어나는 갈등은 당연한 것이라고 가르쳐주려 합니다. 이것을 알면, 성도들은 이 두 법 사이에서 불필요한 신앙적 고민을 하지 않게 됩니다.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죄의 법’은 명문화 된 법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죄가 역사하는 원리나 죄의 세력을 지칭합니다. 하나님의 법과 죄의 법이 싸워 마땅히 하나님의 법을 이겨야 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죄의 법이 하나님의 법을 이기고 성도를 죄의 법의 노예로 만들어 버립니다. 이런 현상이 성도들이 현재의 삶 가운데서 겪는 실상 입니다. 

 

바울이 이처럼 성도가 겪는 신앙적인 현실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1) 성도가 자신이 처한 현실에서 이처럼 죄에 사로 잡힌 존재임을 깨닫게 하고. (2) 이런 비참한 상황일지라도, 성도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가 풍성하게  우리 삶을 변화 시키는지 알게 하고자 합니다. (3) 비록 성도들이 죄의 법 때문에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더라도, 성도는 하나님의 법을 따르고자 해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비참한 현실 가운데 있을지라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라고 (25절) 선포하게 됩니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24 What a wretched man I am! Who will rescue me from this body of death?

 성숙된 성도는 ‘자기혐오 (self-disgust)와 ‘자기 절망’ (self -despair)의 상태에 이르게 되고 자기 육신 안에 선한 것이 조금도 없다는 사실을 뚜렷하게 인식하게 됩니다. 이 사람은 자신의 곤고함을 알고 믿음으로 구원을 호소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법과 죄의 법 간의 갈등을 극복하게 해달라는 호소를 하나님께 하게 됩니다. 

반면에 불신자와 성숙되지 못한 성도들은 ‘자기의’ (self-righteousness) 와 자기 확신 (self-confidence)에 가득차서 자신이 ‘비참한 피조물’임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불신자와 성숙되지 못한 성도들은  자신을 구원 할 존재이신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습니다. 

 

‘곤고한 사람’

 곤고한 사람은 ‘심한 고난을 겪은 사람’ 혹은 ‘비참한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바울의 이 탄식은 선을 행하고자 노력하지만, 항상 실패한 자신의 부족함을 나타낸 것입니다. 바울 자신은 전혀 선을 행할 능력이 없다는 절망감과 비참함을 탄식합니다. 성숙한 크리스찬은 바울처럼 자기 자신의 상태를 명확히 알고 자신 안에 일어나는 죄의 법과 하나님의 법 사이의 갈등에 대해 하나님께 호소하고 기도하며, 주께로 나아가야 됩니다. 그러면,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의 지혜와 풍성한 은혜가 우리를 감싸고 우리를 고쳐주실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과정을 겪고 있는 그대로 자신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입니다.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25 Thanks be to God-through Jesus Christ our Lord! So then, I myself in my mind am a slave to God's law, but in the sinful nature a slave to the law of sin.

  바울은 24절에서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고 질문을 던진 다음 25절에서 그 답을 알려줍니다.

 바울은 비참한 상황에서 자신을 구원하신 그리스도와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이는 20-23절에 이어지는 내용이지만, 본절은 진정한 해방에 대한 선포입니다. 이것은 탄식이면서도 몸의 구속에 대한 진정한 구원을 기다릴 준비를 하게 하는 내용입니다. (8:23) 앞서 진술한 내용의 비참한 현실을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는 믿음으로 성숙시켜 나아감으로 하나님의 은혜 안에 머물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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