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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요한복음

요한복음 1장 :35-39

by 갈렙과 함께 2024. 6. 29.

요한복음 1장 :35-39

35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36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7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거늘

38 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 이르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

 

Romans 1: 35-39

35 The next day John was there again with two of his disciples.

36 When he saw Jesus passing by, he said, 'Look, the Lamb of God!'

37 When the two disciples heard him say this, they followed Jesus.

38 Turning around, Jesus saw them following and asked, 'What do you want?' They said, 'Rabbi' (which means Teacher), 'where are you staying?'

39 'Come,' he replied, 'and you will see.' So they went and saw where he was staying, and spent that day with him. It was about the tenth h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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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장 :35-39

35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35 The next day John was there again with two of his disciples.

 

  저자인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공생애에 대해 세 부분으로 나누어 진술하고 있습니다.

(1)세례요한이 메시야의 앞길을 준비하는 내용 (19-34절)

(2) 예수님과 제자들의 초반부 만남에 대한 내용 (35-51절)

(3) 예수님 능력이 드러난 기적 사건과 제자들의 믿음이 굳건해진 내용   (2:1-11절)

 

  ‘자기 제자 중 두 사람’

이들 중 한 사람은 베드로의 형제인 안드레 였습니다 (40절). 또 다른 한 명은 이름을 밝히지 않았는데, 그는 저자 사도 요한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사도요한은 자신이 등장한 여러 상황에서 자신의 이름을 거의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세례요한과 사두개인들과의 논쟁과, 세례 요한의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을 직접 목격한 자임이 명확합니다. 그가 그 상황에서 직접 목격하였기에, 세례 요한의 주요 메세지인 ‘하나님의 어린 양’을 증거할수 있었을 것입니다. 

 

36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6 When he saw Jesus passing by, he said, 'Look, the Lamb of God!'

  세례 요한이 하루 전에 말한 증언을 다시 반복한 것 (29절)은 그와 함께 있던 두 제자에게 예수님이 ‘하나님의 어린 양’이니 그들을 예수님에게로 보내고자 말한 것입니다. 이는 세례 요한의 겸손한 신앙을 잘 나타냅니다 (3:30). 동시에 그가 사랑하는 제자를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진정한 스승임을 보여줍니다.

 

37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거늘

37 When the two disciples heard him say this, they followed Jesus.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

요한의 두 제자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요한의 증언을 ‘듣고’ [에쿠산], 그 말에 순종하여 예수를 따랐습니다. [에쿠산]은 단순히 ‘듣음’이라는 수동적 의미만 아니라 자발적으로 순종하는 의미도 포함됩니다 (롬 1:5, 10:17, 살전 2:13). 

 

  ‘예수를 따르거늘’

말씀을 듣고 바로 순종했습니다. ‘따르거늘’ [에콜루데산]은 지적, 종교적, 도덕적인 면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추종한다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신약성경에서 이 용어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마 8:19, 19:27막 6:1, 8:34).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향한 전적인 헌신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제자가 된다는 것은 구원 (8:12,막 10:17)받음 만 아니라, 고난(12:24,막 8:34)받음에 모두 참여한다는 의미입니다.

 

38 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 이르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38 Turning around, Jesus saw them following and asked, 'What do you want?' They said, 'Rabbi' (which means Teacher), 'where are you staying?'

 

  ‘무엇을 구하느냐 ‘

‘구하느냐’ [제테이테]는 ‘찾아다니다, 구하다’라는 의미이고, 인간이 궁극적으로 찾고 구해야 할 것을 나타내는 동사입니다(행 17:27,고전 1:22). 신약성경에서는 구원과 연관하여 사용되었습니다 (마 18:12, 눅 19:10).

예수님의 질문은 ‘[너희가 궁극적으로 찾고 구하는 것이 무엇이냐?’ 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이 죄악된 세상에서 참으로 구할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십니다. 세상이 추구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추구하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궁극적인 가치와 숨겨진 보화들에 대해서 세상은 관심이 없습니다 (요일 2:16).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소망의 소중함을 깨달은 자들은 모든 것을 팔아서라도 그 보화를 사려고 할 것입니다 (마 13:44).

 

  ‘ 랍비여’

[랍비]는 ‘나의 존경하는 분’이라는 의미를 지닌 아람어입니다. 초기 유대교 때부터 이 단어는 높은 지위의 사람이나 상급자를 지칭하거나, 제자들이 선생을 칭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B.C. 2세기경 부터 제자들이 선생님을 공손히 부를때 만 사용되었습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 였던 두 사람은 이 단어를 사용하여 예수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어디든지 따르겠다는 의지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들은 아직 예수님의 신분이나 그 분의 사명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 상태입니다. 

 

  ‘어디 계시오니이까’ [푸 메네이스]

이 문구는 ‘랍비’라는 호칭과 함께 사용되던 유대인의 관용적 표현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율법교사들에게 대화를 요청하고자 할 때 이런 관용적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므로 두 제자의 이 질문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존경과 겸손을 나타냅니다.

 

  ‘번역하면‘ 이라는 표현이 신약성경에 사용된 이유는, 예수님 당시에 이스라엘에서 사용된 히브리적인 용어나 아람어를, 헬라어를 사용하는 독자들에게 이해를 시키고자 기록된 것입니다. 저자는 본문을 당시 상황을 현장감있게 재현 시키고자 아람어로 기록하고 있기에, 헬라인들도 이해하기 쉽도록 번역을 첨부했습니다.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

39 'Come,' he replied, 'and you will see.' So they went and saw where he was staying, and spent that day with him. It was about the tenth hour.

 

  ‘와서 보라 ‘

‘오다’ [에르코마이] 와 ‘보다’ [호라오]가 합쳐진 단어입니다. ‘오라’는 예수님 계신 곳으로 초청의 말씀이고, ‘보라’는 제자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는 확정하는 말씀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아오는 자들을 향한 초대와 구원을 보장하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계신데’는 예수님이 가족과 거처했던 갈릴리 나사렛이 아니라, 베다니 근처의 어느 장소 였을 것입니다. 저자가 장소를 구체적으로 기술하지 않은 것은 거처나 장소가 중요하지 않고, 그들의 관심은 예수 그리스도 와의 교제가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

이 시각을 기록한 것은 그 만남이 역사적인 사실임을 부각시키고자 추후에 기록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 현장에서, 현장의 목격자인 사도 요한은, 이 기록을 에베소에서 헬라인들을 위해 기록했기에 시간에 대한 기록을 로마식 표기법을 이용해 기록했습니다. 

이 시간은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 요한이 만난 시점이고, 인류 역사상 최초로 ‘기독교 공동체’가 탄생한 기념비적인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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