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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마태복음

마태복음 8장

by 갈렙과 함께 2023. 7. 20.

마태복음 8장:1-4

1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 오시니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1 When he came down from the mountainside, large crowds followed him.

5장 1절에 ‘예수께서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유대산악 지방에서 머무르시며 12명의 제자를 임명하여 제자훈련을 끝낸 뒤, 다시 산에서 내려오셨습니다. 일반 백성들이 사는 갈릴리 근처의 낮은 지방으로 내려오셨음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에서 말씀을 가르치는 동안 그의 소문이 각지로 퍼져서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교훈을 듣고자 모여 들었습니다. 그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라 낮은 지역으로 내려옵니다. 

 

2 한 나병환자가 나아와 절하며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2 A man with leprosy came and knelt before him and said, 'Lord, if you are willing, you can make me clean.'

문둥병자는 겸손하게 무릎을 꿇고 절합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치유해주실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병을 고치실 능력이 있음을 확신했지만, 주님이 자신을 고치실 생각이 있으신지는 다른 문제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원하시면’ 자신의 병이 치유될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겸손하게 말합니다. 당시 문둥병은 죽은자를 다시 살려낸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라고 간주되었습니다. (왕하 5:7,14) 오직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만이 이 병을 고칠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3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

3 Jesus reached out his hand and touched the man. 'I am willing,' he said. 'Be clean!' Immediately he was cured of his leprosy.

구약의 율법에 따르면, 문둥병자와 접촉한 자는 문둥병자의 죄성에 오염된 것으로 간주되어 부정한 자와 동일한 취급을 받았습니다.(레 11:40,13:46) 율법대로라면, 예수님은 이 문둥병자에게 손을 댄 것이니 똑같이 부정한 자가 된 것으로 볼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완성이시고 안식일의 주인 이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율법에 의해 갇히지않고 율법을 지배하십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이 문둥병자의 치유 여부를 판단할 때 환자들과 접촉했어도 그들은 부정하지 않았던 것처럼 (레 13:2-8) 예수님 께서 문둥병자에게 손을 대셔도 하나님 앞에서 부정하지 않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우리의 인류의 죄를 대속하려고 이땅에 오신 영원한 대제사장이심을 증명해 주는 증거라고 볼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문둥병자의 믿음에 대해 ‘내가 원하니’ 라고 답하시고, ‘깨끗함을 받으라’ 라는 말씀으로 육체적 정결과 내면적 정결까지 포함한 완벽한 치유를 명령하십니다.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 진지라’ 주님의 치유 선언과 동시에 치유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가진 권위와 초월적 능력을 입증해줍니다. 예수님은 손을 대심과 ( 죄인을 향한 따뜻한 사랑의 표현) 말씀 (주님의 초월적 치유 능력)으로 한 생명이 새롭게 태어납니다.

 

4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시니라

4 Then Jesus said to him, "See that you don't tell anyone. But go, show yourself to the priest and offer the gift Moses commanded, as a testimony to them."

예수님은 삼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함구를 명하십니다. 그 이유는 1)기적에 대한 허황된 소문이나 백성들의 잘못된 신앙관을 방지하고 , 2)치유받은 자의 교만을 방지하고, 3) 특히, 유대인 종교지도자들의 견제와 시기 받음으로 복음 전파에 방해를 받지않고자 하심입니다. 치유받은 자가 율법의 예로 제사장 앞에 가기 전에 기적의 소문이 먼저 퍼질 경우, 제사장의 편견으로 그릇된 판결이 있을 것을 유의하셨습니다.  그러나, 치료받은 자가 주님의 함구령을 지키지않아 복음 전파에 장애가 생깁니다. (막 1:45)

 ‘모세가 명한 예물을 드리라’는 것은,  레위기 13장 4-17절의 규례 의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파괴하지않고 율법을 완성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원하기만 하시면 어떤 질병도 치유하실수 있으십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예수님의 권능을 증명하는 수단으로 사용된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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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8장 : 5-13

5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5 When Jesus had entered Capernaum, a centurion came to him, asking for help.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선교 중심지였습니다. 가버나움은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으로 팔레스틴 분봉왕 헤롯 안디바의 로마 부대가 주둔한 곳입니다. 이 백부장은 헤롯의 이방인 출신 용병으로 수하에 100명의 병사를 거느린 중급 지휘관입니다. 누가 복음 7:2-10 에서는 이 사람이 유대인의 존경을 받는 지휘자임을 밝혔습니다.

 

6 이르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6 'Lord,' he said, 'my servant lies at home paralyzed and in terrible suffering.'

백부장은 예수님을 ‘주’(Lord)라고 믿음과 존경으로 존칭합니다.  백부장은 혈육이나 상전도 아닌, 자신의 피지배자, 천민인 하인의 병을 고치고자, 직접 찾아와 간구하고 있습니다. 이 하인은 백부장이 특별히 아끼고 사랑하는 자로 보입니다. 체면과 허례허식을 버리고이런 간청을 한다는 것은 그가 자상한 인성을 지닌 훌륭한 인격자임을 알게 합니다. 

중풍병, 뇌졸증은 그 당시는 기적이 아니면 치유불가능한 병입니다. 

 

7 이르시되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7 Jesus said to him, 'I will go and heal him.'

예수님께서 치유하셨던 사역의 대부분이, 병자들이 예수님께 찾아오거나, 예수님의 메시지를 전달 받고 치유되었습니다. 이 구절 처럼 예수님 께서 직접 병자를 찾아 가겠다고 제안 하신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예수님은 왜 직접 가시겠다고 하셨을까요? 당시의 사회적인 상황은 이렇습니다. 백부장은 헤롯의 용병으로 로마인이 아닌 다른 이방인일 가능성도 있지만, 유대인들은 점령자인 로마인을 착취하는 자, 혹은 이방인이라고 경멸하였습니다. 로마인들은 유대인들을 위험한 피지배인들, 편협한 종교집단으로 멸시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서로간의 편견과 증오의 벽을 사랑과 정의로 허물어 버리려고 하신 것입니다. 동시에 이방인에 대한 당신의 관심을 나타내려 하셨습니다.

 

8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8 The centurion replied, 'Lord, I do not deserve to have you come under my roof. But just say the word, and my servant will be healed.

백부장은 자신의 죄됨을 인식하고 영적 도덕적으로 자신이 부족하다고 인식한 겸손한 자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초월성과 절대적 거룩하심을 인지했습니다.  자신의 집에 오심을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겸손한 고백을 합니다. 백부장은 예수님의 말씀만으로도 자기 하인이 나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전능한 절대자로 믿었다는 증거입니다.

 

9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9 For I myself am a man under authority, with soldiers under me. I tell this one, 'Go,' and he goes; and that one, 'Come,' and he comes. I say to my servant, 'Do this,' and he does it."

백부장은 군인으로서 황제에게 권한의 일부를 위임 받고 자기 수하 백명을 다스리는 명령체계 안에 있습니다. 그가 자신의 경험을 근거로 예수님께 말씀만으로 치유해 달라고 한 이유를 설명합니다. 

그가 예수님을 자연과 우주를 복종시키는 전능한 통치자로 인식한 지혜를 가졌다는 것은 매우 놀랍습니다.

 

10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10 When Jesus heard this, he was astonished and said to those following him, 'I tell you the truth, I have not found anyone in Israel with such great faith.

이 백부장은 이방인입니다. 예수님을 메시야로 계시 한 구약적 배경을 거의 알지 못했을 것임에도, 어떤 유대인들 보다 예수님의 인격과 예수님의 존재적 본질을 더 깊이 인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만나신 유대인 중에 말씀만으로 질병이 낫겠다고 고백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11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11 I say to you that many will come from the east and the west, and will take their places at the feast with Abraham, Isaac and Jacob in the kingdom of heaven.

선지자 이사야는 은혜의 때와 구원의 날에 일어날 일을 예언 했는데(사 45:6, 49:12) 예수님은 그날에 대해 언급하신 것입니다. 전세계 만민에게 복음이 전파되고 복음을 믿고 구원 받은 자들이 신앙의 조상들과 함께 천국잔치에 참여하게 될 것을 말합니다.

 

12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12 But the subjects of the kingdom will be thrown outside, into the darkness, where there will be weeping and gnashing of teeth.'

‘그 나라의 본자손’인 유대민족은 그 나라를 상속하게 된 자들 이고 나라에 대한 합법적인 상속권을 가진 자입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므로 당연히 천국에 속한 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전혀 다른 말씀을 하십니다. 단순히 혈통적 순수함만으로는 천국의 기업을 얻을 수 없다고 하시고, 그들이 믿음 안에 바로 서지 않으면, 밖으로 쫓겨나 울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울고 이를 간다’는 것은 심해의 절망을 의미합니다. 그들의 고통과 절망을 위로 하러 오신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함으로 다른 누구의 위로도 받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13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

13 Then Jesus said to the centurion, "Go! It will be done just as you believed it would." And his servant was healed at that very hour.

예수님은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라고 하시며 백부장의 하인을 고치십니다. 예수님의 은혜는 무한하십니다. 그러나 그 은혜는 인간 각자의 믿음의 분량 만큼 주어집니다. 각자의 그릇에 합당한 은혜가 주어집니다. 백부장은 말씀만으로도 고쳐주실줄 믿었고, 그의 믿음대로 하인이 고침 받는 기적이 바로  실현되었습니다. 

누가복음 7:6절에서 그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그의 집에 도착하기 전에, 그 하인의 병이 나았다고 백부장의 친구들이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바로 능력이고, 그의 말씀은 실행되어 그대로 이루어짐이고, 말씀은 창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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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8장: 14-17

14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사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운 것을 보시고

14 When Jesus came into Peter's house, he saw Peter's mother-in-law lying in bed with a fever.

이 무렵 베드로는 갈릴리 해변의 가버나움에 살고 있었습니다.(4:18-20) 베드로의 고향은 벱세다인데 결혼하면서 가버나움으로 옮겨 어부로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일정한 거처가 없으셔서(8:20) 베드로의 집에 자주 들러 거처 하셨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예수님께서 사역하시는 동안 그의 장모는 딸, 사위돠 함께 기거했고, 베드로의 형제인 안드레도 함께 살았던 것으로 보입니다.베드로의 아내는 바울과 베드로의 전도 여행에 동행한 것으로 보입니다. (고전 9:5) 

장모는 말라리아 나 장티푸스 같은 열병에 걸렸을 것입니다. 당시로서는 치명적인 질병입니다. (눅 4:38,39) 그 집에 들어가서, 치유를 간청 받기전에 예수님께서 장모의 상태를 바로 보십니다.

 

15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

15 He touched her hand and the fever left her, and she got up and began to wait on him.

유대인의 생활방식을 규제하는 랍비의 율법 할라카(halacha)에 열병이 있는 사람과 접촉하지 말라고 금지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3절에서 손을 내밀어 문둥병 환자에게 손을 만지셨듯이, 베드로의 장모의 손을 만지시고 병을 고치십니다. 그 환자는 곧 나아서 예수님 수종을 듭니다. 

 

16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16 When evening came, many who were demon-possessed were brought to him, and he drove out the spirits with a word and healed all the sick.

유대인들은 해가 지는 시점을 기준으로, 하루가 끝나고 다시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안식일 날 그 저녁 부터 이튿날 저녁 까지 철저한 안식을 합니다.  사람들이 귀신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온 시점은 저물때로, 해가 지고 저녁이 시작될 무렵입니다. 이유는 노동이 금지된 안식일이 지나기 까지 기다렸다가 데려온 것입니다. 

  ‘귀신 들린 자’는 성경에서 육체적인 질병과는 명백한 구분을 두고 언급합니다. (4:24,12:22, 17:18) 성경은 그 당시에 정신 질환의 발병원인을 사단의 역사라고 봅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 지방에 귀신들린 자들이 많았던 것은 이렇게 설명할수 있습니다. 1) 그 당시 유대인들이 대단히 사악하였고 도덕적으로나 신앙적인 측면에서 매우 불경건한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2) 그들은 괴상한 마술에 심취하여 악령을 부르고 그들과 자주 접촉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악한 귀신을 쫓아 내시고 그 환자의 정신을 맑게 하신 것은 예수님이 영과 육을 주관하시는 만왕의 왕이심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동시에 이 땅에 어둠의 세력을 완벽하게 몰아내고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었음을 학증하는 것입니다. (사 11:1-5, 35:5,6) 누가는 이 사건을 이렇게 언급합니다. ‘귀신들이 나가며 소리질러 가로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 이니이다’ (눅 4:41)

  ‘ 병든자를 다 고치심’을 마가복음 에서는 예수께서 각색 병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막 1:34) 라고 기록했습니다.  마태복음에서 ‘다’(all) 라는 표현을 마가복음은 ‘많은’(many)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 고친 것은 많이 고친것이니, 동일한 의미합니다. 이로써 마태는,’ 예수님께서 고칠수 없는 질병은 없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17 This was to fulfill what was spoken through the prophet Isaiah: 'He took up our infirmities and carried our diseases.'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사 53:4) 를 인용하여 종으로서의 그리스도가,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해서 담당하심으로 고난 당한다고 표현합니다. 이것은 질병이나 고통이 예수님께로 옮겨졌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고난과 죽음을 통해서 다른 사람의질병과 고통을 대신 짊어지셨음을 강조한 표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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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8장 : 18-22

18 예수께서 무리가 자기를 에워싸는 것을 보시고 건너편으로 가기를 명하시니라

18 When Jesus saw the crowd around him, he gave orders to cross to the other side of the lake.

무리가 에워싸는 것을 보신 시점은 베드로의 장모를 치유하신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으로 추정됩니다. (14,15절) 마가는 ‘그날 저물 때’라고 기록했습니다. 이때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병을 고치신 기적을 보고 무리지어 모여들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를 개인적으로 교육 시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시고,  무리를 떠나 제자 훈련 시간을 갖고자 무리에서 멀어지고자 하십니다. 

예수님은 디베랴바다, 즉, 갈릴리 바다의 북서부에 위치한 가버나움에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건너편은 아마도 디베랴 바다 동부 지역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19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아뢰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

19 Then a teacher of the law came to him and said, 'Teacher, I will follow you wherever you go.'

서기관은 교사 혹은 가르치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그가 예수님의 가르침에 승복하고 권위를 인정하여  ‘선생님이여’ 라고 예수님을 호칭합니다. 예수님이 어디로 가시든지 따라 가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 분의 삶을 따라가고  그 인격, 그 모습을 닮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의 제자가 될때 고통과 연단이 함께 함을 그가 알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따르려면, 자기  십자가를 지고 박해와 고통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야 됩니다.

 

20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20 Jesus replied, 'Foxes have holes and birds of the air have nests, but the Son of Man has no place to lay his head.'

하찮은 짐승도 자신이 보금 자리가 있지만, 세상의 주인이신 창조주 그리스도는 안식처 없는 나그네 상황에 놓이심을 보여줍니다.

 

21 제자 중에 또 한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21 Another disciple said to him, 'Lord, first let me go and bury my father.'

‘제자’는 자신의 전체 삶을 예수께 헌신하고 다른 모든 생활을 버리는 사람만이 될수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 신앙을 고백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는(요 6:66) 제자가 될수 있습니다. 제자로 지칭된 이 사람은 아버지 장사를 먼저 하게해달라고 요청하는데 , 요청을 거절 당하기 전에 이미 제자라고 불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서기관이나 이 사람이나 둘다 예수님의 제자에게 속했던 자로 보입니다. 

 이 두번째 사람은 그리스도께 소명 받은 제자가 해야할 우선 순위를 혼돈하고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따르고 싶은 열정과 자신의 의무를 지키고 싶다는 소망 가운데서 망설이고 있습니다. 앞의 서기관은 열정적이고 지나치게 자신의 믿음을 표현하고, 두번째 사람은 매우 소심한 신앙태도를 보입니다. 그는 진정한 제자의 길에 최선을 다하는 신앙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십계명 제 5계명에 부모를 공경하라고 했습니다. 자식된 자는 마땅히 자기 부모의 장례식에 참석해야되는 것이 이스라엘의 당연한 관행입니다. 당연히 나이든 부모를 봉양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부친을 장사하게 해달라는 이 제자에게 다른 선택을 요구하십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인생의 최우선 순위를 다른 곳에 두어야 된다고 가르치십니다. 그리스도의 제자에게 최우선 순위는 복음의 선교 사역이라고 하십니다.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

22 But Jesus told him, 'Follow me, and let the dead bury their own dead.'

예수님은 인간적 윤리를 모르거나 무시하는 비윤리적인 분이 아니십니다. ‘죽은 자’라는 말의 의미는 두가지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죽었다는 말을 1) 어떤 사물에 대한 무관심을 나타내는 말로서,  2) 그 사물이 우리에게 아무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는 뜻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대하여 죽었다, 율법에 대하여 죽었다 (롬7:4), 죄에 대하여 죽었다(롬 6:11) 라는 말은 세상이나 율법, 죄 등이 우리에게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즉, 우리가 그런 것들로 부터 이제 자유롭다는 말입니다. 

 ‘내일에 무관심한 자, 곧 영적인 사망자들, 그리고 죄 안에 죽어 있어 우리와 관계 없는 자들’ 로 하여금 (엡 2:1) 죽은 자들을 돌보게 하라는 것입니다. 즉, 영적으로 죽어버린 자들이 육적인 죽음을 맞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세상 근심에서 자유한 상태로 복음 선교에 동참해야 된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의 우유부단한 심정을 간파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일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가르치십니다. 이런 관점에서 “아비나 어미를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라고 (10:37) 다시 가르치셨습니다.  부모를 공경함은 너무나 마땅히 할 일이고,  죽은 자를 추모하고 장례를 치르는 것은 참으로 아름답고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특별한 소명을  받은 제자라면,  주어진 선교의 사명을 최우선 하는 기본 정신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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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8장: 23-27

23 배에 오르시매 제자들이 따랐더니

23 Then he got into the boat and his disciples followed him.

예수님이 타신 당시의 배는 돛을 달지 않은 12-13명정도의 어부가 타는 작은 고기잡이 배였습니다. 예수님이 타신 배와 예수를 따르던 무리를 실은 다른 배들도 해안을 떠났습니다.

 

24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께서는 주무시는지라

24 Without warning, a furious storm came up on the lake, so that the waves swept over the boat. But Jesus was sleeping.

‘큰 놀’은 지진이나 바다의 폭풍우이고, 어부 출신이 제자들도 큰 두려움을 느낄 정도의 강력한 풍랑입니다. 갈릴리 바다는 이런 현상이 자주 일어났습니다. 갈릴리 바다는 해수면보다 240m아래 위치하고 주변의 산들은 높은 고원을 이루고 있습니다. 해수면의 온도가 올라가면, 이런 지형적 영향으로 기압의 차이가 생기고 고원 지역에서 거센 바람이 불어옵니다. 이로인해 거친 파도가 일어납니다. 

파선될 지경의 배에서 예수님은 매우 피곤하여 곤하게 깊이 잠들어 계십니다. ‘고물에서 베게를 베고 주무시더니’ (막4:38) 예수님은 이 상황에 동요하지 않으십니다.

 

25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이르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25 The disciples went and woke him, saying, "Lord, save us! We're going to drown!"

노련한 어부 출신의 제자들은 위기 상황을 해결하려고 나름 노력을 해보아도 배가 더 가라 않을 위기가 되자,  바다에 대해 알지 못하는 목수 출신의 예수님을 깨웁니다. 그 분 외에는 기댈 곳이 없을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주여 구원하소서 ‘[퀴리에 소손]은 지금 즉시 구원해 달라는 간구 입니다. 사태의 급박성을 나타냅니다. 제자들은 거의 절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죽겠나이다’ 는 헬라원문에 현재 시제로 표현되어 직역하면, ‘우리가 죽어가고 있나이다.’ 입니다. 제자들은 자신들 앞에 죽음이 다가 왔음을 직감하고 주님을 찾습니다.  우리들도 죽음의 문제와 매일의 삶의 모든 문제를 우리주 예수그리스도를 찾아가서 해결해야 됩니다.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26 He replied, 'You of little faith, why are you so afraid?' Then he got up and rebuked the winds and the waves, and it was completely calm.

제자들은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와 함께 배에 탔음에도 바람과 파도의 비배 아래만 머물러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꾸짖으신 것은 단순한 그들의 공포나 위기의식이 아닙니다. 그들 안에 있는 불신앙적 성향과 상황에 지배되는 미숙한 신앙태도를 탓하십니다. 그들이 예수님과 일치된 관계가 될때 그들은 질병이나 죽음이나 압박도 무서워하지 않게 됩니다. 예수님은 그 모든 것을 초월해 계신 만유의 주인이시며, 전능하신 하나님 이시기 때문 입니다.

 예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말씀으로 우주와 자연의 질서를 다스려 가시는 전능자 이십니다. 그러므로 바람과 바다에 명하여 바다의 풍랑은 즉시 멈추게 하셨습니다.

우리 예수님과 함께 하는 순간, 우리의 삶의 모든 ‘큰 놀’들도 즉시 잔잔하게 됩니다. 제자들이 느꼈던 그 평안이 우리 삶 가운데 은혜로 다가올 것입니다.

 

27 그 사람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더라

27 The men were amazed and asked, 'What kind of man is this? Even the winds and the waves obey him!'

‘어떠한 사람이기에’ , 어느 누구도 이런 능력을 소유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지금까지 그분의 인격과 권능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음을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 하나님 이외는 어느 누구도 거센 파도와 폭풍우를 잠재울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 입니다.

‘바람도 바다도 순종하는’ 예수님의 절대적인 권능에 자연도 능동적으로 즉시 순종합니다. 예수님의 신적 능력을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시 89:9, 107:2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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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8장 :28-34

28 또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귀신 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 그들은 몹시 사나워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 지경이더라

28 When he arrived at the other side in the region of the Gadarenes, two demon-possessed men coming from the tombs met him. They were so violent that no one could pass that way.

‘가다라’ 는 베레아 지역의 수도였고 멀지 않은 곳으로 ‘거라사’지역도 포함됩니다. 마가(마5:1-20)와 누가(눅 8:26-39)에는 ‘거라사인의 지방’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지역은 이방인의 거주 지역으로 유대인은 부정하다고 먹지않는 돼지를 키우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 귀신들린 자’들은 정신적 결함이나 자폐적인 환자가 아니라 악한 영의 지배 아래 놓인 자를 말합니다. 귀신들린 자들이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에 특별히 나타난 것은 하나님 나라 확장에 대항하고 자하는 사단의 강한 저항과 관련 있습니다.  가다라 지방은 석회암으로 된 언덕이 있고 고대 무덤이 있었습니다. 그 무덤은 작은 방이나 굴처럼 되어 있습니다. 귀신들린 자들은 어둡고 음산한 곳에 있고자 무덤을 택했을 겁니다. 군대 귀신들의 지배하에 있던 귀신들린 자 의 난폭한 행동을 잘 묘사합니다. 귀신들린 자는 자신의 고유한 인격이 파괴되고 마귀의 파괴적 성향만 남게 됩니다. 

 

29 이에 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하더니

29 'What do you want with us, Son of God?' they shouted. 'Have you come here to torture us before the appointed time?'

귀신들은 예수님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여’ 라고 신성을 지니신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그들은 우리와 당신이 아무런 공통점이 없는데 왜 우리를 괴롭히고 방해하려는가 우리를 내버려두라고 합니다. 

  ‘때가 이르기 전에’의 때는 세상의 종말, 사탄의 최후의 날, 심판의 날을 말합니다. 사단의 세력은 영원한 심판의 때가 오기전까지는 제한적인 자유가 허락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삼하 16:10, 왕하 9:18, 엡 2:2, 6:12) 악령들은 미혹하고 괴롭히도록 허용되지만, 심판날에 모든 악인과 함께 영원한 징벌에 처해질 것입니다. (벧후 2:4, 유 1:6)  그들은 예수님이 심판주 이심을 알았고 때가 오기전에 무저갱에 던져질까 두려워한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30 마침 멀리서 많은 돼지 떼가 먹고 있는지라

30 Some distance from them a large herd of pigs was feeding.

마가는 돼지가 약 이천마리라고 했습니다.(막 5:13) 마태는 이 돼지떼는 ‘멀리서’ 먹고 있다고 상세하게 기록하고, 이는 사람들이 소동을 일으켜서  돼지가 도망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전능하신 신적 능력에 의해, 멀리 떨어진 곳의 돼지에게 일어났음을 보여줍니다.

 

31 귀신들이 예수께 간구하여 이르되 만일 우리를 쫓아 내시려면 돼지 떼에 들여 보내 주소서 하니

31 The demons begged Jesus, 'If you drive us out, send us into the herd of pigs.'

예수님은 귀신들린 자를 만나자 즉시 귀신들에게 이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명령하십니다. (막 5:8, 눅 8:29) 그러자 귀신들이 예수님께 간구합니다.

 

32 그들에게 가라 하시니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는지라 온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 들어가서 물에서 몰사하거늘

32 He said to them, 'Go!' So they came out and went into the pigs, and the whole herd rushed down the steep bank into the lake and died in the water.

귀신들은 모든 생명체. 특히 무인격체에 쉽게 들어가서 그 대상을 자유롭게 장악할수 있기에 돼지에게 돌입했습니다. 돼지가 비탈로 달려가 몰사했다는 것은 귀신들렸던 자가 완전히 그들에게서 자유롭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33 치던 자들이 달아나 시내에 들어가 이 모든 일과 귀신 들린 자의 일을 고하니

33 Those tending the pigs ran off, went into the town and reported all this, including what had happened to the demon-possessed men.

34 온 시내가 예수를 만나려고 나가서 보고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34 Then the whole town went out to meet Jesus. And when they saw him, they pleaded with him to leave their region

온 시내 사람들이 자신들의 재산손실때문에 예수님을 체포하려 왔지만, 예수님을 보자 그 위엄에 압도되어 그곳을 떠나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들은 귀신들렸던 불쌍한 사람에게 베푸신 예수님의 선행보다, 자신들의 재산손실에 더 마음을 쓰고 있습니다.

 오늘도 그리스도의 참된 진리와 사랑을 받아 들이지않고 자신들 에게서 떠나고 간섭말라고 주장하는 어리석은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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