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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마태복음

마태복음 6장

by 갈렙과 함께 2023. 7. 7.

마태복음 6장:1-6

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1"Be careful not to do your 'acts of righteousness' before men, to be seen by them. If you do, you will have no reward from your Father in heaven.

유대인들은 의, 기도, 금식에 대한 종교적 의무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의[義] (2-4절), 기도 (5-15절), 금식(16-18절)에 대해 가르침을 주십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의무를 사람에게 잘 보일려고 해서는 안된다고 말씀 하십니다. 사람에게 자신의 행위를 드러내고 인정받으려 할 때,  그 행동은 언제나 위선이 되기 쉽습니다. ‘하나님 앞에 선다’는 코람데오[Coram Deo]의 마음으로 매사를 하나님을 먼저 생각한다면 이런 오류에서 벗어날수 있습니다.  의를 행하는것은 율법에 정해진 내용을 그대로 실천하는 바른 태도를 말합니다.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사람들에게 경건한 자로 인정받기 위해 일부러 사람들 앞에서만 의를 행하는 척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이런 행위를 지적하시고 제자들은 이처럼 하지 않기를 바라셨습니다.  

Jews have religious obligations for righteousness, prayer, and fasting. Jesus teaches about righteousness (v. 2-4), prayer (v. 5-15), and fasting (v. 16-18).
However, he says that you should not try to make all these obligations look good to people. When you try to expose your behavior to a person and be recognized, it's always easy to be hypocritical. If you think about God first with [Coram Deo]'s mind of "standing before God," you can escape this error. Doing righteousness refers to the right attitude of practicing what is prescribed in the law. At that time, religious leaders deliberately pretended to do righteousness only in front of people to be recognized as pious. Jesus pointed out their actions and hoped that the disciples would not do this.

 

2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2 'So when you give to the needy, do not announce it with trumpets, as the hypocrites do in the synagogues and on the streets, to be honored by men. I tell you the truth, they have received their reward in full.

사람에게 잘보이려는 자들은 사람들의 눈에 띄이기 쉬운 회당이나 거리에서 이런 종교적 의무를 다하는 척했습니다. 유대에서는 궁핍한 자를 위한 구제성금을 낼 때 나팔을 불었습니다. 공식적 금식기도를 선포할 때 나팔을 부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여기서 ‘나팔불지 말라’는 것은  ‘자랑하지 말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하는 기도와  구제 행위와 금식를 하는 이유는 사람들의 칭찬입니다. 이미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다 받았으니 하나님 앞에서 받을 상은 없습니다. 

Those who wanted to look good to people pretended to do these religious duties in synagogues and streets that were easy to see. In Judea, trumpets were sounded when offering relief money for the needy. It began by blowing the trumpet when the official fasting prayer was declared. Here, 'don't flutter' is used to mean 'don't brag'. The prayer and relief of the Pharisees and the reason for fasting are people's praise. They have already received everything they want, so there is no prize to receive in front of God.

 

3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3 But when you give to the needy, do not let your left hand know what your right hand is doing,

자신의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왼손 조차도 모르게, 자신이 베푼 자선에 대한 기억을 아예하지 말고 , 자선행위를 한다는 것을 의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선행을 자신과 전혀 무관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Your left hand knows what your right hand did. Nevertheless, without even knowing your left hand, don't remember the charity you gave at all, and don't be conscious of doing charity. It is to make the good deed completely irrelevant to you

 

4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4 so that your giving may be in secret. Then your Father, who sees what is done in secret, will reward you.

구제를 한 사람이 그 구제한 사실을 잊게 되면, 하나님께서 그 사실을 기억해 주실 것입니다.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께서 일일이 다 기억해 두시고 그에 합당하게 반드시 갚아주십니다. 

If the person who saved it forgets the fact, God will remember it. God, who secretly sees it, remembers everything and pays it back accordingly.

 

5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5 'And when you pray, do not be like the hypocrites, for they love to pray standing in the synagogues and on the street corners to be seen by men. I tell you the truth, they have received their reward in full.

유대인들은 하루 세번(오전 9시, 정오, 오후3시) 회당에 올라가 기도를 드렸습니다. (눅18:9-14, 행3:1, 10:9) 만약 기도시간일 때 외출 중이라면 길가에 서서 라도 기도를 드렸습니다.  처음 의도는 순수한 것이었으나, 시간이 자나면서 남을 의식하게 되고 기도시간에 일부러 외출해서 남들앞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생겼던 것같습니다.  

 기도란, 하나님과 나 자신이 만나는 정결한 만남의 시간입니다. 그러니 기도할 때는 오로지 만유의 주인이신  창조주 하나님과의 교제에만 집중해야 됩니다.

The Jews went up to the synagogue three times a day (9 a.m., noon, and 3 p.m.) to pray. (Nuk 18:9-14, Acts 3:1, 10:9) If you were out during prayer time, I prayed even if you stood by the side of the road. At first, the intention was pure, but as time went by, I became conscious of others, and I think there were people who went out on purpose during prayer time and prayed in front of others.
Prayer is a time of pure meeting between God and myself. Therefore, when praying, you should focus only on your relationship with the Creator God, the master of all things.

 

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6 But when you pray, go into your room, close the door and pray to your Father, who is unseen. Then your Father, who sees what is done in secret, will reward you.

골방은 경건한 유대인들이 평소  하나님께 기도드리던 공간입니다. 바리새인들은 그들의 골방을 비워두고 회당과 큰거리 어귀에서 남들 보라는 듯이 기도했습니다. 골방[타메이오]은 ‘자르다 ’[템노]와 ‘청지기 [타미아스]의 합성어입니다. 즉, 세상의 모든것을 단절하고 오로지 하나님과의 은밀한 대화를 나누는 공간 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우리 방문을 닫고, 세상과 잠시 단절한 뒤,  오직 하나님과 나 자신 외는 어느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순결한 공간과 시간을 가져야 됩니다. 오직 하나님 만을 바라보고 그 분 앞에 숨김없이 기도한다면, 모든 것을 듣고 계신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갚으실 것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변하지 않습니다.

The small room is a space where reverent Jews usually pray to God. The Pharisees left their chambers empty and prayed as if to be seen at the entrance of the synagogue and the main street. Golbang [Tameio] is a combination of 'cut' [temno] and 'Cheongjigi [Tamias]. In other words, it means a space where everything in the world is cut off and only has a secret conversation with God. We must close our doors, cut off from the world for a while, and have a pure space and time without interference from anyone but God and myself. If you only look at God and pray in front of him without hiding, God, who is listening to everything, will repay it. The promise of the faithful God does not 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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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6장 : 7-9

7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7 And when you pray, do not keep on babbling like pagans, for they think they will be heard because of their many words.

예수님은 기도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해주십니다. 먼저, 중언부언하지 말라 하십니다. 즉, 말을 지나치게 많이 하고 의미없는 말을 반복해 말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주님께서 강조하는것은 기도의 시간 자체가 아닙니다. 단순히 짧고 간단히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겟세마니 동산에서 밤을 지새며 오랫동안 기도하셨습니다. 그처럼, 기도의 길이에 상관없이 하나님께 합당한 기도를 드리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실것을 믿는 마음으로 간구하면 되는 것입니다. (사 65:24, 히11:6)

Jesus explains the prayer in detail. First of all, don't say anything. In other words, they say not to talk too much and repeat meaningless words. It is not the time of prayer itself that the Lord emphasizes. It's not just to be short and simple. Jesus also stayed up all night in the Garden of Gethsemani and prayed for a long time. As such, regardless of the length of the prayer, you can pray to God and pray with the heart that God, who listens to our prayers, will respond. (Acts 65:24, Hebrew 11:6)

 

8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8 Do not be like them, for your Father knows what you need before you ask him.

기도을 길게하거나 반복해 말하면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줄 것이라고 믿는 이방인의 미신적인 신앙관 (왕상 18:26-28)을 그대로 답습해 우상에게 하듯이 기도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기도할 대상은 우상이 아니라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은 전지전능 하시니, 우리 자신보다 우리 형편과 처지를 더 잘 아시는 분이심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을 세밀히 알고 우리의 필요를 알고 계시지만, 우리가 하나님과 인격적인 대화를 나누기를 원하십니다. 기도도 하지 않고, 다 아시면서 왜 안주시느냐고 하지 말아야 됩니다. 당신의 자녀인 우리들이 당신을 깊이 신뢰하고 우리 필요한 것을 간구하길 원하십니다. 

They follow the superstitious belief of strangers (the Kings 18:26-28) who believe that if you pray for a long time or repeatedly, they will fulfill their demands and tell you not to pray as if you were doing it to an idol. The object we will pray for is not an idol, but an omnipotent God. He is omnipotent, so we must know that he knows our situation and situation better than ourselves. God knows our lives in detail and knows our needs, but he wants us to have a personal conversation with God. You shouldn't pray and ask why you don't give it to me when you know it. We, your children, want to trust you deeply and beg for what we need.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9 "This, then, is how you should pray: " 'Our Father in heaven, hallowed be your name,

이제 기도의 표본을 제시해주십니다. 기도의 올바른 자세와 기도의 내용과 순서 방법에 대한 모범을 보여주십니다. 

[하늘에 계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무한한 소망과 깊은 신뢰를 드리며, 우리 자신의 본향이 하나님이 계신 곳임을 먼저 인식하라고 하십니다. 

[우리 아버지여]

구약에서도 하나님의 부성에 대해 자주 언급되었으나,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이렇게 직접적으로 호칭한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그리스도로 인한 새 언약의 표시로 이해됩니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자녀를 돌보시는 유일한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엡3:14,15)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주기도문의 7개 항목의 내용중에서 앞부분 3개 항목은 하나님께 찬양하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합니다. 뒤의 4개 항목은 개인의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기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보여줍니다.하나님은 자신의 이름 그대로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 이시며, 그가 자신을 계시하시는 그대로의 그분 자신이십니다. (출 3:14) 그러므로 그분의 이름에는 거룩하신 인격과 능력과 권위도 함께 하십니다.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그분의 이름은 무한히 거룩하시고 그 이름의 가치에 걸맞는 거룩한 대접을 받으셔야 되는것입니다. (레 19:2, 겔36:23, 벧전 1:15]  세상에 그분의 이름만큼 거룩한 존재는 없습니다. 그 거룩하신 주의 형상대로 우리가 창조되었으나, 인간은 이미 순수함을 상실했습니다. 그러니 인간의 천한 생각이나 행동으로 인해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경멸받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말 1:6) [거룩]이라는 단어는 ‘분리됨’ ‘구별됨’ ‘성별됨’ 이라는 의미로 이해되지만, 거룩함은 하나의 속성이기 이전에 바로 [하나님 자신]=[what he is] 입니다. 거룩하다는 것은 신성 자체를 나타냅니다. 하나님은 모든 세속과 사악함에서 구별되시는 분이시며, 흠이 없으신 지존자 이시며, 우리가 유일하게 예배와 경배를 드려야되는 대상이십니다. (사 29:23)

Now you give me a sample of prayer. It sets an example of the correct posture of prayer and the content and order of prayer.
[In the sky]
We give infinite hope and deep trust to Almighty God, and ask him to first recognize that our own home is where God is.
[My father]
God's fatherhood has often been mentioned in the Old Testament, but there are few cases where God is called "our father" directly. Our Father is understood as a sign of the new covenant by Christ. God is our only father who takes care of his children with love. (Ep 3:14,15)
[You said your name should be holy]
Of the seven items of the Lord's Prayer, the first three items praise God and recognize God's sovereignty. The next four items are made up of prayers about individual realistic problems.
God's name shows who God is.God is a man who exists by himself as his name, and himself as he reveals himself. Therefore his name is accompanied by a holy personality, power, and authority.
[You said to be holy]
His name is holy indefinitely, and he is to be treated holy enough to be worthy of his name. (Lewish 19:2, Ezekiel 36:23, Peter 1:15)  There is no such thing as his name. We were created in the image of the Holy Lord, but humans have already lost their innocence. Therefore, it is a prayer that God's holiness will not be despised by human low thoughts or actions. (Malachi1:6) The word [Holy] is understood to mean 'separated', 'distinguished', but holiness is [God himself] = [what he is] before it is an attribute. Holiness represents divinity itself. God is a man who is distinguished in all worldly and wickedness, a blameless person, and the only object we must worship and worship. (Isaiah 2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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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6장:10-13

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0 your kingdom come, your will be done on earth as it is in heaven.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가 미치는 영역입니다. 하나님께서 영원히 거룩하시고 절대적인 주권을 가지시고 영원히 통치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의로운 요구들 (7:21, 12:50)과 구속사에서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 (18:14, 26:42) 이 포함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와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지려면 십자가의 대속적 죽음이 실현되어야 되고 동시에 절대적인 순종과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야 됩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려면 우리도 이렇게 기도해야 됩니다. 이 기도는 메시야 왕국의 완성을 뜻하는 기도입니다.

The kingdom of God is the realm of God's sovereignty and rule. God is holy forever, has absolute sovereignty, and rules forever. It is a prayer that God's will be fulfilled on this earth just as it was in heaven. God's will includes God's righteous demands (7:21, 12:50) and God's plan to achieve in the confinement (18:14, 26:42). In order for God's rule and God's righteousness to be achieved, the continued death of the cross must be realized, and at the same time, a history of absolute obedience and repentance must occur. In order for God's will to be fulfilled on this land, we must pray like this. This is a prayer that means the completion of the kingdom of Messiah.

 

11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11 Give us today our daily bread

하나님과 그 나라를 위한 기도가 끝나고 이제 개인의 신앙과 생활에 실제 필요한 것들을 기도합니다. 그중 첫번째가 양식에 대한 것입니다. 일용할 양식은 ‘그날’ 하루의 양식을 말합니다. 주기도문은 우리의 필요에 대한 요구나 탐욕을 채우기 위한 기도가 아닙니다. 이 겸손한 기도는 그날 벌어 그날 먹어야 하는 자에게 너무도 소중하고 절박한 기도입니다. 당시 1세기의 일당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했던 수많은 노동자들은 하루의 일당으로 생계를 유지하였고 매우 불안정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의 의미속에는 ‘지금’과 ‘바로 뒤따라 오는’ 이라는 뜻이 함께 있습니다. 앞으로 올날을 위하여 우리의 양식을 오늘 우리에게 주옵소서라는 의미가 됩니다. 일용할 생존에 매일 필요한 것들에 대해 구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양식’을 우리에게 주신다고 우리가 일해야되는 책임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노동은 우리의 양식을 벌수 있는 선한 능력이고 모든 선한 것은 하나님의 손길로 부터 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신명기 8:18,고린도 전서4:7, 야고버서1:17)

또한 일용할 양식은 물질적인 음식만이 아니라 성찬과 하나님의 말씀도 의미합니다. 우리의 영적 양식도 매일 간구하여 영적고갈이 오지 않도록 매일 기도해야됩니다.

After praying for God and the country, I now pray for the actual needs of my individual faith and life. The first of them is about form. Daily food refers to the daily food of the day. The Lord's Prayer is not a prayer to satisfy our needs or greed. This humble prayer is a very precious and desperate prayer for those who have to earn that day and eat that day. A lot of the workers who had to make a living on a one-century daily basis at the time were making a living on a daily basis and living in great instability. In the meaning of 'today', there are meanings of 'now' and 'right after'. It means to give us our form today for the day to come. Ask for daily necessities for daily survival.
Just because God gives us "form" doesn't mean we don't have to take responsibility for working. It is important to remember that labor is a good ability to earn our food and that all good things come from the touch of God. (Deuteronomy8:18, Corinthians 4:7, James 1:17)
Also, daily food means not only material food, but also communion and the word of God. Our spiritual style should also be prayed every day to prevent spiritual exhaustion.

 

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12 Forgive us our debts, as we also have forgiven our debtors.

신약성경의 ‘죄’로 번역된 원어는 [하마르티아]로 어떤 목표에 미달된 것을 의미합니다. (눅 11:4) 마태는 이것을 ‘빚, 부채’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마태의 기록처럼 말씀하셨던 것으로 보입니다. 누가는 주님께서 은유로 표현하신 것을 분명히 전달하려고 [하마르티아]를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죄는 하나님께 마땅히 해드려야 할바를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도덕적인 빚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하여 준 것같이라는 표현은 우리의 용서가 하나님의 용서에 대한 근거가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우리를 용서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는 하나님이 우리 죄를 사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도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해야 된다고 강조합니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 대해 지은 죄가 엄청나게 많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은 남들이 자신에게 끼친 해가 상대적으로 매우 작아 보입니다. 반대로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끼친 해가 크게 보이는 사람은 자기 죄는 아주 작게 보이게 됩니다. (c.f.Moule)

진정한 회개는 단순한 후회와는 다릅니다. 철저한 자기 부정과 겸손이 있어야 자신의 죄가 더 크게 보이고 하나님 앞에 바로서게 됩니다.

 

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13 And lead us not into temptation, but deliver us from the evil one.'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약 1:13) 야고보의 말씀처럼 본문의 시험(temptation)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들은 시련과 역경을 만나더라도 그것을 기쁘게 여기라(고전 10:13,약1:2) 고 한 시련(testing)은 하나님께서 성도의 신앙을 연단하여 더 큰 믿음을 낳게 하려는 것입니다.  본절의 시험(temptation)은 ‘타락의 결과를 가져오는 유혹’을 의미합니다. (막14:38, 갈6:1)

이 기도는 시험에 날마다 노출되고, 사악한 악마의 미혹에 쉽게 넘어지는 인간의 한계를 생각한다면 반드시 매일 드려야 되는 기도입니다. (고전10:13)  ‘악에서 구하옵소서’ 는 사단의 공격에서 보호하고 지켜달라는 간구입니다. (엡6:16, 요일 3:12) 우리는 사단 앞에 무력한 존재로 그를 이길수 없으나 (4:1-11) 주님께서 우리의 보호자 이시고 주께서 함께 하시는 우리는 매일 승리할수 있습니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

이 귀절은 고대 유력한 사본과 평행을 이루는 누가 복음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유대인의 관습에 따라 후대 기독교회가 주기도문의 완전한 형태를 만들고자  송영(Doxology)으로 첨가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송영 안에는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의 다양한 사역에 대한 내밀한 암시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성부의 창조 섭리는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공급하십니다. 성자의 속죄는 우리의 용서를 확인해주십니다. 성령께서 내주( 우리 안에 거주) 하심은 우리의 안전과 승리를 보장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10절) 영원하실 것이며 당신 백성에게 하신 선하신 약속을 성취시키실 (12절) 권세와 영광 (9절)이 다 하나님께 속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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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6장 :14-18

14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14 For if you forgive men when they sin against you, your heavenly Father will also forgive you.

잘못 [파라프토마타]는 ‘한편으로 치우치다’는 의미로 진리나 의에서 이탈됨을 나타내는 말입니다.치명적 결과를 초래하는 범죄[하마르티아] 와는 다른 것입니다. 타인의 잘못을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자신의 죄악에 대해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행위입니다. 이것이 참된 회개의 자세입니다. 주기도문의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6:12) 의 기도를 더욱 심화하고 강조한 내용입니다.

 

15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15 But if you do not forgive men their sins, your Father will not forgive your sins.

우리에게 은혜 베풀기를 원하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고자 하시더라도, 우리가 형제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으면, 우리도 용서받기 어렵습니다. 하나님께 받기 원하는 그대로 우리 형제에게 베풀어야 됩니다. 이것이 기독교 가르침의 핵심입니다. 하나님께 자비를 얻고자 하면 형제에게 자비를 베풀고, 하나님과 화해를 원하면, 형제와 먼저 화해해야 됩니다.

 

16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16 'When you fast, do not look somber as the hypocrites do, for they disfigure their faces to show men they are fasting. I tell you the truth, they have received their reward in full.

 모세의 율법에는 1년에 한번 금식하도록 규정하였습니다(레16:29-31, 민29:7) 바벨론 포로 시절에는 하나님께서 개입하셨던 지난 역사를 회고하며 회개하고 새날을 기다리기위해 정기적으로 금식할 것을 규정했습니다. (슥7:3-5,8:19) 국가적 차원의 금식외에도 각 집단과 개인이 다양한 목적으로 금식이 행해졌습니다. 금식은,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자세를 나타내고자, 주앞에 더욱 겸비하고자 행했습니다. (느 9:1,2,시 35:13, 사58:3) 벗어날수 없는 큰 번민과 위기, 절망에 빠졌을 때, 하나님의 구원을 호소하고자 (출 24:18, 삼하 1:12, 예4:16, 행14:23) 행해졌습니다.  그러나, 금식이 단순히 형식적이거나 위선적으로 행해져서 비판이 있었습니다. (사 58:3-7, 렘14:12, 슥7:5,6) 금식을 하나, 이웃을 구제하는데는 부관심한 행동에 대해서는 혹독한 비판을 했습니다. (사 25:1-7)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월요일과 목요일 두번 금식을 했습니다. 금식을 할때는 배고픔과 육체적 고통이 따릅니다. 예수님께서 지적하신 부분은, 이런 고통을 자신의 의와 경건을 자랑하는 도구로 사용해서 인위적인 표정까지 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신앙생활을 자기의를 만족시키는 도구로 전락시키지 말아야 됩니다. 신앙생활은 오로지 하나님 앞에서 이루어지는 참된 경건한 시간입니다. 금식을 하면 자연히 외모가 평소보다 피폐하게 보이고 흩어집니다, 자신의 내적 죄악을 깊이 통회, 자복하려고 재를 뒤집어쓰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은 통회로서의 금식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자신의 신앙심을 드러내보이고 존경과 칭찬을 박고자 하는 허식적 금식의 잘못을 지적하셨습니다.

 

17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17 But when you fast, put oil on your head and wash your face,

금식을 할 때는 오히려 기름을 바르고 (평소 일상적인 몸단장의 절차로 사용됨) (룻 3:3, 삼하12:20, 전9:8) 더 청결히 하라고 하십니다. 다윗이 밧세바가 낳은 아이가 병들자 금식하며 기도하다가 아이가 죽자, 금식 을 중단하고 일어나 몸을 씻고 기름을 발랐습니다. (삼하 12:15-20) 예수님은 금식 자체를 금하지 않으셨습니다. 금식은 하나님 앞에 바로 서고자 하는 행위입니다. 사람에게 자랑하기 위해 슬픈 기색을 하고, 몸이 상한 기색을 나타내지 말아야됩니다. 

 

18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18 so that it will not be obvious to men that you are fasting, but only to your Father, who is unseen; and your Father, who sees what is done in secret, will reward you.

금식은 자신을 부정해 가는 과정입니다. 육신의 고통이 따르지만,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를 위해 일종의 육체와의 단절을 나타내는 결단입니다. 이 과정을 그치면, 하나님앞에서 더욱 겸손해 질수 있습니다. 세상 욕망과 자신의 혈기를 내리고 거룩함으로 더 나아갈수 있습니다. 금식은 하나님을 상대로 하는 것임을 명심하고 사람을 대상으로 하려면 아예 하지 않는 것이 더 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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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6장: 19-21

19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19 'Do not store up for yourselves treasures on earth, where moth and rust destroy, and where thieves break in and steal.

은행이 없던 예수님 당시의 팔레스틴 사람들은 자신의 소중한 보물은 땅속에 묻어두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땅은 하늘과 대조되는 장소로 영원한 미래가 없는 순간적인 이 세상을 의미합니다. ‘쌓지 말라는 것’은 쌓기를 그만두라는 의미입니다. 그런 잘못된 행동을 바로 단절하라고 하십니다. 

재물을 다루는 그리스도인의 바른 자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이 땅의 재물과 보화가 최상의 것이 아닙니다. 

2) 탐욕에 가득찬 자들이 지상 재물에 애착하나 믿는 자는 하늘의 것을 사모해야 됩니다. 

3) 하나님 심판의 날에 이런 재물이 우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4) 그리스도인에게도 재물이 필요하지만, 어것을 반드시 풍족히 소유해야 만족하지 않습니다. 적은 것으로도 만족하며 기쁘게 살아갈 수 있어야 됩니다.

좀(moth)은 옷이나 음식물을 해치는 벌레 이고, 동록(rust)은 금속의 부식(corrosion)을 말하고, 쥐나 곰팡이에 의한 피해를 뜻하기도 합니다. 

도둑이 구멍을 뚫는다는 것은 당시 진흙벽이나 흙벽돌로 쌓아 집을 만드니 도둑들이 그 흙벽의 구멍을 뚫어 귀중품을 가져갈 수 있음을 말합니다. 아무리 재물을 모아도 외부의 침탈이 있으니 안심할 상황은 아닙니다. 

 

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20 But store up for yourselves treasures in heaven, where moth and rust do not destroy, and where thieves do not break in and steal.

‘땅’과 비교하여 ‘하늘’은 보다 안전하고 영원 지속하며 거룩하며 가치가 영원히 보존 되니 땅의 보화와 비교할 수없이 위대한 가치가 있습니다., (눅 12:33) 하늘에 쌓아두는 ‘하늘의 보물’은 이 땅에서 행한 선한 일로서 영원한 가치를 지닌 그 무엇이든지 해당됩니다. 의로운 일을 행하는것,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 받는것, 남을 용서해 주는 것등 이 모든 일에는 보상이 따르며, 하늘에 쌓아두는 보물이 됩니다. (5:12, 고후 4:17)  남에게 친절을 베풀거나 (10:42,25:40), 자기 소유를 타인을 위해 투자하는 것등도 하늘의 보물이라 할 수있습니다. (딤전 6:17-19)

 

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21 For where your treasure is, there your heart will be also.

이 귀절은 신앙인이 실제 삶의 살아갈 때 마음 깊이 새겨야할 기본 자세입니다. 인간은 자신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으로 그의 인격의 중심인 마음이 다 가게 됩니다. 그의 지(知), 정(情),의( 義)가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에 의해 지배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소중히 여기는 보물이 자신의 마음의 중심을 차지하게 되니 모든 행동의 방향과 자신의 가치관이 그것에 의해 결정되게 됩니다. 명에를 소중히 여기는 자는 야망의 포로가 되고, 돈을 최고로 여기는자는 돈의 노예가 되며, 쾌락을 제일 좋아하는 자는 방탕에 빠지게 된다고 칼빈은 말했습니다.

무엇이 자신의 주인인지 항상 생각해야 됩니다. 우리의 주는 하나님 이십니다. 하나님, 예수그리스도 말고는 어느 누구 그 무엇도 우리의 주인이 되게 하지 말아야 됩니다. 재물이 흔히 우리의 주인이 되기 쉽습니다. 우리는 거의 모든 시간을 돈을 벌기위해 일하고, 돈을 벌수있는 직업을 갖고자 교육받는데 많은 시간을 집중합니다. 우리의 소중한 시간을 재물과 맞바꾸어 도둑맞을 ‘땅’에다 재물 쌓기에 급급 합니다. 그러면, 우리 하늘 창고는 텅텅 비게 되니 조심해야 됩니다. 천국의 법에 지배 받기 원하는 자는 항상 선한 일에 애쓰면 그들의 행적은 언제나 남아서 그에게 영원한 기쁨이 될 것입니다. (계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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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6장:22-25

22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22 'The eye is the lamp of the body. If your eyes are good, your whole body will be full of light.

눈이 보여야 사물을 식별하고 길을 찾으니 눈은 몸의 등불입니다. 여기서 눈은 은유적으로 ‘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육체의 눈이 보이는 것과 ‘마음’이 보는 것이 거의 같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됩니다. 만약 육체의 눈이 세상의 것에 빠져들면, 그 마음 역시 타락의 늪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육체의 눈이 하늘의 것을 바라보면, 그 마음도 신령한 것들로 채워질 것입니다. 건전하고 진실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몸은 바른 판단력을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왜곡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눈을 가지면, 신령한 것과 속된 것을 구분 할수 있습니다. 동시에 그 빛을 따라 행동하게 됩니다. 진리를 진리로 받아들이고, 진리가 아닌것을 분별해내고,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동한다면 우리는 참된 지혜가운데 살게 될 것입니다. 

 

23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

23 But if your eyes are bad, your whole body will be full of darkness. If then the light within you is darkness, how great is that darkness!

유대인의 관용적인 표현에서 ‘악한 눈’은 이기적이고 인색하다는 의미입니다. ‘눈이 나쁘다’는 의미는 그 사람의 관심이 하나님과 세상 재물 양쪽으로 가니,  하나님의 뜻과 영적 세계를 제대로 보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세상 재물에 현혹되어 영적 세계와 침된 진리를 보지 못하는 눈을 통해서는, 온 몸에 진리가 전달 될수 없습니다. 그의 전 인격과 영혼은 흑암 상태에 있게 됩니다. 

 

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24 'No one can serve two masters. Either he will hate the one and love the other, or he will be devoted to the one and despise the other. You cannot serve both God and Money.

이제 예수님은 우리에게 누구를 주인으로 모실 것인지 택하라고 하십니다. 종은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합니다. 두 주인을 섬기려면, 어느 한 주인도 제대로 섬기지 못합니다.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물질과 비교될 수없는 존재이십니다. 만물의 주인이신 분, 재물 조차도 하나님으로 부터 온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도 재산을 모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재산을 소유하는 것을 정죄하지 않으십니다. 그리스도인도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재산을 모을 수 있으나 이것 자체가 인생의 목적이 되거나, 재물 만을 추구하면 잘못된 행위입니다. 동시에 정당하게 모은 재산으로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사용해야 됩니다.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5 'Therefore I tell you, do not worry about your life, what you will eat or drink; or about your body, what you will wear. Is not life more important than food, and the body more important than clothes?

그러므로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하니, 재물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을 선택했을 때 )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서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목숨으로 번역된 [퓌스케]는 인간의 비물질적인 부분으로, 육체적 죽음 이후에도 멸절되지 않는 영혼을 나타냅니다. 예수님께서 이 ‘ 푸쉬케’는 

죽이지 못한다 (10:28)고 하셨습니다. 인간은 물질적인 것 보다 영혼을 더 중하게 여겨야 됩니다. 

 예수님께서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관심을 갖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일에 지난친 욕심과 집착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염려는 ‘분열하다’, ‘나뉘다’라는 의미의 [메리조]에서 유래된 단어로 지나친 근심걱정으로 마음이 여러갈래로 분열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가 염려에 지나치게 몰입되면 우리 인생의 참 목적을 상실하게됩니다.  우리가 영적인 문제를 고민해야 되는데 물질로 인해 마음이 분열되니, 영적 문제를 망각하는 잘못을 저지르게 됩니다.  

 음식물을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먹는것입니다. 그런데, 음식 자체에 집착해서 무엇을 먹을까 염려하고 있으니 이는 잘못입니다. 바른 신앙인은 우리에게 목숨을 주신 하나님을 믿고 염려하지 말아야 됩니다. 필요한 음식과 옷을 당연히 받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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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6장 :26-34

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6 Look at the birds of the air; they do not sow or reap or store away in barns, and yet your heavenly Father feeds them. Are you not much more valuable than they?

거두지도 않는다는 것을 우리가 먹고 사는문제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새들도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먹이를 찾아 본능적으로 노력합니다. ‘거두지도 않고’는 먹을것에 대해 지나친 고민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자연의 피조물들이 어떻게 먹고 사는지를 살펴보면, 우주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적 간섭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볼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그 분의 사역 안에서 참된 믿음을 가져야 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공중의 새보다 더 소중한 존재로 여깁니다. 그러니 공중의 새를 먹이는 하나님께서 우리 목숨에 필요한 음식을 공급하지 않으시겠습니까?

 

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27 Who of you by worrying can add a single hour to his life?

‘한 자’는 한 팔의 길이로 히브리인들의 ‘규빗’에 해당됩니다. 한 자를 더 한다는 것은 약 8인치 정도 신장이 늘어나는 것입니다.

 

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8 'And why do you worry about clothes? See how the lilies of the field grow. They do not labor or spin.

인간의 관심사인 의복에 대해서도 언급하십니다. 들의 백합화 [타 크리나]는 여러 종류의 모든 야생화를 의미합니다. 인간은 길쌈, 옷감을 짜지만 야생화들은 자신의 아름다움을 위해  아무 행위도 하지 않아도 아름답습니다. 그러니, ‘생각하여 보라’ [카타마데테]는 많은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성장을 자세히 관찰해 보라는 것입니다.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29 Yet I tell you that not even Solomon in all his splendor was dressed like one of these.

가장 부유하고 화려한 생활을 했던 솔로몬 조차도 아름다운 백합화처럼 완벽하고 조화로운 치장을 하지 못했습니다. 꽃 하나 하나 하나님의 생명의 법칙이 숨어있고 그 조화로움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 일까 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30 If that is how God clothes the grass of the field, which is here today and tomorrow is thrown into the fire, will he not much more clothe you, O you of little faith?

아궁이에 던져질 하찮은 들풀조차도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입히시는데 

쓸데없는 염려로 영혼보다 재물과 세상일에 집착하는 제자들을 꾸짖고 계십니다. 믿음이 적은 우리들도 제자들과 동일한 태도로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염려를 버리고, 하나님을 굳게 믿고 현실을 지혜롭게 잘 극복해야 되겠습니다.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1 So do not worry, saying, 'What shall we eat?' or 'What shall we drink?' or 'What shall we wear?'

‘~하지 말라’는 부정 과거 시제로 표현되어, “조금도 염려하지 말라’는 절대 금지의 의미를 나타냅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작은 것일지라도 크나큰 관심으로 지켜보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보시니,  믿는 자라면, 자신이  굶지 않을까 헐벗지 않을까 걱정하지 말아야 됩니다. 계속 근심하고 염려하는 것은, 당신의 자녀에게 필요한 것을 이미 알고 계신 하나님을 모욕하는 행동입니다.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2 For the pagans run after all these things, and your heavenly Father knows that you need them.

‘이방인들’은 하나님 나라의 의에 무관심하고, 먹고 사는 것 만을 추구하는 자들을 통칭하는 말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합니다. 물질적인 것을 초월할 만한 신앙인의 자세가 없으니항상 세상 근심과 염려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믿는 자가 세상일을 염려하지 말아야 되는 이유입니다.

1) 물질적인 것만을 추구하는 것은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이방인의 태도도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크신 사랑으로 당신의 자녀를 돌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신다’는 것은 단순한 지적 인식(recognition)의 차원이 아닙니다. 그 필요를 넉넉하게 채워주시는 완전하고 전인적인 인식을 의미합니다.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3 But seek first his kingdom and his righteousness, and all these things will be given to you as well.

‘하나님 나라를 구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와 예수님에 의해 이미 시작된 메시아 왕국에 대한 복음에 순종하여, 그 복음을 전파하기에 힘쓰라는 의미입니다. 동시에 그 나라의 완성을 고대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구한다’는 것은 신학적 의미의 칭(稱) 의 (義)를 구하라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산상수훈처럼 ,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복종하여 하나님과 바른 관계속에서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혼의 만족과 평안을 주시고,  삶에 필요한 이 모든 것을 채워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라. 그러면 세상것 너희가 원하는 작은 것들도 덤으로 주겠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하늘의 양식을 먼저 추구하고 이미 필요한 것을 알고 계시니 하늘의 뜻을 바라보아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간구하는 모든것 위에 ‘덤으로’ 세상의 모든것을 채워주실 것입니다. (딤전 4:8)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34 Therefore do not worry about tomorrow, for tomorrow will worry about itself. Each day has enough trouble of its own.

우리는 내일 일어날 세상 일을 염려하고 해결하고자, 오늘 많은 노력을 합니다. 내일은 항상 다시 또 다가오니, 내일의 문제를 오늘 다 처리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오늘의 은혜는 오늘 충분하니 새 날이 오면 새로운 은혜를 힘입어 살아가야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내일의 염려는 내일의 새 은혜로 감당해야 되는 것입니다.

 한날의 괴로움, 매일 매일 마주치는 온갖 어려움들은 그날 그날에 감당하기에 적합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라 ‘

는 말씀은 ‘염려’를 치유하는 근본 원리입니다. 이것은 우리를 사랑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약속입니다. 우리는 오직 오늘 일에 우리의 관심을 기울이고 오늘에 충실히 살아야됩니다.  내일의 고난과 불행이 오늘 앞당겨 일어나지 않습니다. 염려는 불신앙적 행동입니다. 내일의 주인은 내일을 염려하고 있는 인간이 아닙니다. 내일의 주인은 우리를 미리 생각해주시는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바로 오늘 하루의 분량을 살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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