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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마태복음

마태복음 10장

by 갈렙과 함께 2023. 8. 1.

마태복음 10장: 1-2

1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1 He called his twelve disciples to him and gave them authority to drive out evil spirits and to heal every disease and sickness.

예수님께서 열두제자를 임명하신 것은 이전의 예비단계를 (4:18-22, 요 1:35-51)거쳐서 이 시점에 결정을 하신것입니다. 마가와 누가의 기록에 의하면, 산상수훈 이전에 예수님께서 밤새 기도하신 후 제자들을 택하셨습니다.(막 3:13, 눅 6:12-16) 그후 그들에게 일정기간 제자 훈련을 시키신 뒤 (막 6:7-13, 눅 9:1-6) 그들을 파송하셨습니다.  

   열두 제자 임명은 오순절 성령 강림후 탄생하게 될 새로운 개척 교회를 책임질 적임자를 훈련시키는 준비 단계 였습니다. 

 이스라엘의 12지파처럼, 12명의 제자들은 새로운 이스라엘을 대표하게 될 것입니다.  이들의 직무는 병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고 복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가르침 받은 교훈과 그 분이 세우신 종교의 본질, 그 분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증인이 되기 위함입니다. 12제자들은 당시의 종교지도자 같이 많이 배운 자는 아닙니다. 그들은 높은 지위의 사람이 아니고, 타인에게 종교를 강요할 만한 능력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본바를 그대로 전달하는 평범하고 정직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 께서 이들을 ‘부르사’ 구원 사역을 이루려고 하셨습니다.  그들 자신과 집단, 혹은 민족 전체에 소명을 부여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권능’을 주셨는데, 이는 권세와 능력, ‘권위와 통치권’ 입니다.  그 권능 중에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 있었습니다. 귀신은 ‘더러운 영들’, ‘악한 영들’ 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인간에게 원수가 되고, 인간의 정신과 도덕과 육체에 해를 주는 영입니다. (12:43) 이 일은 병 고치는 일 보다, 더욱 중한 하나님 나라의 권능을 실행하는 것입니다. 사단의 왕국을 허무는 직접적 능력입니다. 이는 소명받은 제자들의 사도적 권위를 확증하는 중요한 표시였습니다. 유대인의 유전(12족장의 유전 )에 의하면 악한 영을 정복하고 축출하는 일은 대제사장적 메시야의 권능으로만 할 수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는 메시야와 그 나라의 도래를 알리는 확실한 증표입니다. 예수님께 신적 권위를 직접 위임 받은 12제자들은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특수한 은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2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2 These are the names of the twelve apostles: first, Simon (who is called Peter) and his brother Andrew; James son of Zebedee, and his brother John;

‘사도’는 ‘보냄을 받은 자’, ‘사신(messenger), 선교사들(missonaries), 대리자들(representatives), 전권대사(ambassador, 엡 6:20) 같은 의미가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좁은 의미의 사도직으로, 이 조건에 해당되는 자들입니다. 사도행전 1:21,22절에 규정된 내용입니다. (1) 요한의 세례로 예수님 승천시 까지 예수님과 동행한 자 (2) 예수님께서 친히 세우신 자, (3) 예수의 부활을 목격했고, 증언할 자 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부활 이후는 보다 넓은 의미로 사용됩니다. 초대 교회의 수많은 전도자들 (고전 9:1-5,15:7.갈 1:17), 바울과 바나바(행 14:4,14, 갈1:1) 등에게도 적용됩니다. 

  [시몬](Simon)은 ‘시므온’(Simeon)을 줄인 명칭으로 [베드로]의 본명입니다.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는 요나의 아들로, 어부 출신입니다. 갈릴리 벳새다의 토박이였고(요 1:44) 원래 세례 요한의 제자 였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요 1:35–42)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반석’ 이라는 의미인 아람어 ‘게바(Cephas)라는 새이름을 지어 주셨는데 (16:18, 요 1:42, 갈 1:18) 이를 헬라어로 번역하면 ‘베드로’ 입니다 (요1:44). 베드로는 충동적이고 감정적인 성품이었으나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 이후 신실한 예수님의 증인이 됩니다. 이후 초대교회의 기둥이되어 바벨론 까지 선교활동을 하다가 말년에 로마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어달려 순교했다고 전해집니다.

  [안드레]는 ‘용감한 자, ‘남자’ 라는 의미입니다. 그는 베드로의 형제로 베드로를 예수님께 인도 했습니다. 전설에의하면 스구디아, 헬라, 소아시아 지역을 선교하다가 A.D 70년경 파트라에서 X자형 십자가에서 순교했다고합니다.

  [ 야고보]는 ‘발꿈치를 잡다’(창 25:26), [요한]은 ‘여호와께서는 자비로우시다’ 라는 의미입니다. 이들은 베드로와 함께 예수님께 특별히 인정받던 제자들입니다. 야고보는 요한의 형으로, 사도들 중 최초로 순교합니다.(행 12:2, A.D44년 헤롯 아그립바에 의해 참수).  이 두 형제는 부유한 어부인 세베대의 아들로, 대제사장 집안과 관련이 있습니다. (요 18:15,16) 세베대의 아내는 예수님 사역을 보조하고 매우 적극적 성품이었습니다.

   요한은 베드로와 각별한 우애를 나누며 초대교회의 사역을 함께 감당했습니다. (눅 22:8, 요18:15,행 3:1-4,8:14, 갈 2:9) A.D.70 년 예루살렘 멸망 후에도 에베소에 정착하여 선교, 교육에 전념합니다. A.D. 95년경 도미티아누스황제의 대박해 때 밧모섬으로 유배 되었다가 그 다음해 넬바 황제때 에베소로 돌아와 지속적 복음사역을 했습니다.  트라얀 황제때 영면합니다. 그는 폴리캅(Polycarp), 파피아스(Papias), 이그나티우스 (Ignatius)같은 걸출한 지도자를 배출하여 초대교회의 인재 양성에 큰 공헌을 합니다. 요한은 요한 복음서와 요한 계시록을 기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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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0장:3-4

3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3 Philip and Bartholomew; Thomas and Matthew the tax collector; James son of Alphaeus, and Thaddaeus;

  빌립[필리포스]는 헬라이름으로, ‘말을 사랑하는 사람’ 이란 의미입니다.  

그는 세례 요한의 제자였다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고 헬라인들을 예수님께 인도했습니다. (요 12:20-22) 헬라 문화와 언어에 익숙한 자로 아시아의 로마 식민지에서 사역하다가 히에라폴리스에서 순교합니다. 

  [바돌로매]는 히브리 이름으로 ‘돌로매의 아들’이라는 의미인데, ‘하나님의 선물’, ‘나다니엘’ 과 동일인 입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을 예수께 데려왔고(요 1:43-46) 나다나엘은 12제자이고 (요 1:43-51) 사도명단에 빌립과 바돌로매가는 항상 함께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가나 출신으로 (요 21ㅁ;2), 예수님께 칭찬 받은 자입니다. (요 1:43-46)  그는 애굽, 인도, 알바니아 에서 선교 사역을 하다가 순교했습니다.

  [도마]는 ‘디두모’(Didymus, 요11:16, 21:2)라 불리고 디두모는 아람어로 ‘쌍둥이’를 의미합니다. 그는 회의론적인 신앙인의 대명사로 알려질만큼 의심이 많았지만, 그는 용감했고 (요 11:16) 바른 신앙 고백자 (요 20:28)입니다. 그는 인도와 파르티아 선교사로 가서 교회를 세우고 (‘성도마의 교회’ 가 인도에 있슴) 그곳에서 순교합니다.

  세리 [마태]의 본명은 알패오의 아들 레위였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9:9을 참고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는 ‘작은 야고보’라 불리는 자로 (막 15:40)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다른 사람입니다. 그가 27:56, 막 16:1, 눅24:10 에 동인인이라면, 그의 어머니는 예수님의 어머니와, 요한의 어머니 살로메와 자매지간인 ‘마리아’입니다. 야고보의 아버지 알패오는 요 19:25에 나오는 글로바와 동일인으로 예수님의 육신의 아버지인 요셉과 친족으로 추정 됩니다. 야고보에 대한 것은 확증 지을 수 없는 내용으로 정황상 추정되는 자료입니다.

  [다대오]는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명단과 비교해보면,  ‘야고보의 형제 유다’  입니다. 다대오는 ‘사랑스런 자’ (the beloved)의미하는 어근에서 나온 말 입니다. 다대오는 ‘사랑스런자 유다’ ‘유다 다대오’로 불려지고, ‘ ‘가룟이 아닌 유다’ (요 14:22)와 동일한 의미입니다. 외경에 그의 일대기 ‘다대오전’ 이 있고, 그는 시리아, 알마니아, 등지에서 선교활동을 합니다.

 

4 가나나인 시몬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

4 Simon the Zealot and Judas Iscariot, who betrayed him.

 가아인인 [시몬]은 ‘가나안인’ 은 아람어이고 헬라식 표기는 ‘젤로테스’ 인데 ‘열심가’ , ‘열심당원’ 을 의미합니다. (눅 6:15, 해 1:13) 그는 제자로 부름 받기전 유대 족의 전통과 종교를 강력히 지지하는 국수주의적  정치 단체인 셀롯당 (열심당)의 일원이었습니다. 

가룟 [유다] 의 아비는 ‘가룟 시몬’ 입니다.(요 6:71) 남 유다의 가룟 지망 출신으로 추정되고, ‘염색공 유다’라는 견해가 있고, 붉은 머리 였다는 설명도 있습니다. 유다는 12제자중 회계를 맡았으나 지나친 물욕으로 정직하지 못했고 (요 12:6, 13:29) 결국 그의 스승인 예수님을 대제사장에게 팔아 넘기는 배신자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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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0장: 5-7

5 예수께서 이 열 둘을 내보내시며 명하여 이르시되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5 These twelve Jesus sent out with the following instructions: 'Do not go among the Gentiles or enter any town of the Samaritans.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전도자로서 바른 자세와 각오에 대해 가르치

십니다. 먼저 전도의 대상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이방인의 길로도’ 라는 것은 ‘이방인을 향해서 가지 말라’(do not go in the direction of the Gentiles) 의미입니다. 이는 한시적인 명령으로 이방인에게 아직 복음을 전할 때가 되지 않았다라는 뜻입니다. 복음은 메시야  탄생을 위임받은 언약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먼저 전파되어야 했습니다. 이방인들은 훗날 예수님 께서 전세계까지 당신의 증인이 되라고 제자들에게 당부하시며 이방인에 대한 복음 전파를 맡기실 것입니다. (28:19, 행 1:8) 

   사마리아는 가나안 정복 당시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지파에게 분할된 지역입니다, 예루살렘과 갈릴리 사이에 위치 한 곳입니다. 솔로몬 통치이후 ,이스라엘은 분열되어 여로보암 때 북이스라엘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앗수르의 살만 에셀에 의해 정복되었을 때 , 북이스라엘인은 포로로 끌어가고, 이민족을 이곳에 이주 시켰습니다. 이로 북이스라엘인과 통혼하게 되고 민족을 혼혈화시켰습니다. (왕하 17:24)  그로 인해 사마리아는 혈통과 문화와 종교에서 선민의 순수성을 상실합니다. 이 때문에 사마리아인들은 더이상 히브리공동체에 끼지 못하게 됩니다. 포로기 이후 산잘랏과 느낫세를 중심으로 그들 나름의 성전을 그리심산에 건축하게 됩니다. (느 13:28) 이 성전은 B.C109년 힐카누스에 의해 파괴되었으나 그들은 그곳을 계속 성지로 삼고 모세오경을 뿌리로 한 그들만의 종교생활을 해왔습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을 혼합 족속이라 경멸하고 교제를 단절합니다. 갈릴리와 예루살렘사이의 최단 거리인 이곳을 거치지 않고 우회하여 다녔습니다. 

 

6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6 Go rather to the lost sheep of Israel.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목자 없는 양처럼 방황하다가 생명과 진리가 없는 다른 길로 가서 길을 잃고 헤매는 상황을 목격했습니다. (9:36) 유대인은 하나님이 선택된 백성이고 장기간 메시야를 기다려왔습니다. 당연히 이들에게 복음이 먼저 전파되어야 했습니다.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 받은 바울도 ‘첫째는 유대인에게요’(롬1:16, 2:9)라는 선교 원칙을 준수했습니다.

 

7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

7 As you go, preach this message: 'The kingdom of heaven is near.'

가면서 전파하라는 것은 여행중 어디를 가든지 복음을 전하면서 여행하고, 여행하면서 ‘계속 복음을 전하라’ 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은 어디를 가든지 잃어버린 영혼을 만나게 되고 그 순간 마다 그들에게 예수님과 그의 구원의 능력(십자가 죽으심과 죄에서 인류를 구하심)에 대해 선언해야 됩니다. ‘전파하여’ [케뤼쏘]라는 헬라어는 ‘널리 선포하다’ ‘선포하다’ 입니다. 이는 전쟁이 일어났음을 알리는 포고문처럼, 긴박하고 분명한 어조로 선포하는 것을 말합니다.  ‘선포의 내용’은 곧, 주의 나라가 기습적인 도래한다는 것을 알리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 나라’ 의 제1차적 상속자들 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미 도래한 천국을 맞을 준비를 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상속권은 이방세계로 넘겨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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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0장: 8-15

8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8 Heal the sick, raise the dead, cleanse those who have leprosy, drive out demons. Freely you have received, freely give.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기적은 네 종류로 구분됩니다. 1) 신체적 질병 (병든 자), 2) 존재론적 치유 (죽은 자),  3) 종교, 의식적 치유 (문둥병자), 4) 영적, 정신적 치유 (귀신들린 자 )

이 모든 능력을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하십니다. 사역자가 받은 복음과 권능은 모두 하나님의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그들은 받은 것을 전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됩니다. 사역자는 재산을 모으거나 큰돈을 벌기위해 복음을 전파해서는 안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일을 위해 봉사할때 그 상대에게 대가를 요구하지 말아야 됩니다. 이것은 사역자가 굶주려야 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일꾼이 저 먹을 것을 받는 것’ (10절) 은 마땅하지만 복음의 권능을 사리사욕을 채우는데 사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직 은혜로 받은 것이니 은혜로 주라는 것입니다.

 

9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9 Do not take along any gold or silver or copper in your belts;

금, 은, 동은 일종의 화폐수단 입니다. 제자를 파송 시, 돈을 소유하지 말라는 이 명령은 특별히 한시적으로 적용한 선교방법 입니다. (눅 22:35, 36) 돈을 탐해서 그것에 마음을 두면, 죄의 유혹에 빠집니다. (딤 전 6:10) 복음 사역자는 특히 이를 조심해야 됩니다. 

 예수님께서 전하고자 하는 중심은 이것입니다. 보내시는 이가 하나님 이심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신다면 하나님께서 당연히 그 보냄 받은 자를 위해 준비해 주실 것입니다. 보냄 받은 자는 물질적 욕구를 절제해야 되고, 동시에 하나님께서 풍성하게 후원하신다는 확고한 믿음을 가져야 됩니다. 

 

10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

10 take no bag for the journey, or extra tunic, or sandals or a staff; for the worker is worth his keep.

제자들은 여행 중에 식량과 의복과 생필품을 공급 받을 것입니다. 그러니, 식량을 준비할 배낭이나, 여분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고 하십니다.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다’는 것은 제자들에게 도움 받거나 병고침 받은 자들이 제자들의 생필품을 공급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합니다. 전도를 받은 사람은 영적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자연스럽게 전도자들의 물질적 필요를 채워주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모든 일꾼에게 그 일에 합당한 열매를 허락하십니다. (고전 9:14, 갈 6:6, 딤전 5:17,18) 그러므로 주의 복음을 위해 헌신한 선한 일꾼들은 하나님께로 부터 그 일한 대가를 얻을 수 있습니다.

 

11 어떤 성이나 마을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가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11 'Whatever town or village you enter, search for some worthy person there and stay at his house until you leave.

선교 대상지를 어떤 특정지역으로 한정하지 않았습니다. 큰 도시나, 작은 마을을 가리지 않고 여러 지역을 다니며 전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천국 복음을 받아들이고 영적으로 호의를 표시하는 합당한 자의 집에 머물며 전도하라고 하십니다. 이런 사람은 윤리적으로도 타인에게 존경받는 자이므로 사역자가 그 집에 머물면,  온 동네를 복음화 시키기에 적합한 장소입니다. 한 집에 머물며,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복음 전파에 집중하라고 하십니다. 

 

12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12 As you enter the home, give it your greeting.

히브리인들의 전통적 인사말은 [샬롬]은 ‘평화’ 입니다.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을 소개하는 전도자들이 ‘평화’를 첫 인사로 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런 것입니다. ‘샬롬’은 하나님과의 영원한 평화의 관계, 영육간의 모든 축복을 포함한 말입니다. 그 당시 헬라인들의 인사말은 [카이레인], 기쁨, 은혜였습니다. 바울 서신서에는 이 두 가지 모두가 합쳐진 인사, 은혜와 평강을 동시에 묻는 인사말이 자주 등장합니다. 복음 전파자는 그 사회의 일상 통념을 존중하고, 최대한 정중하게 그 집의 평안을 빌고 예절과 상식에 맞는 행동하라고 하십니다.

 

13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13 If the home is deserving, let your peace rest on it; if it is not, let your peace return to you.

복음 전파자가 머물기에 합당하다면, 그 집의 가장은 구원의 메시지를 받아들일 준비가 된 자입니다. 제자들은 평안의 인사와 기도 , 가르침을 통해 그 집에 행복과 번영, 화평이 임하도록 노력해야 됩니다. 그리고, 복음의 축복이 그 가정에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면, 그들의 기도대로 그들에게 이 축복이 임할 것입니다. 순종과 믿음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아들이는 지름길입니다. 

  만약 그들이 그 축복을 받기에 합당하지 않다면, 그 축복은 축복한 자에게로 돌아갑니다. 그러니 누구든지 타인의 행복과 평안을 기원하는데 주저하거나 아까워하지 말아야 됩니다.

 

14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14 If anyone will not welcome you or listen to your words, shake the dust off your feet when you leave that home or town.

예수님의 제자들을 영접하는 것은 축복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들을 

배척하고 복음을 거절하는 것은 축복을 밀어내고 저주를 스스로 초빙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지를 초대하는 것은 예수님을 초대하는 것입니다.  

  발의 먼지를 떨어버리는 것은 상대와의 관계를 단절하는 의식적 정결례 같은 상징적 행동입니다. (느 5:13, 행 18:6)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15 I tell you the truth, it will be more bearable for Sodom and Gomorrah on the day of judgment than for that town.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보다, 복음 사역자들을 받아들이지 않고 사역을 방해하는 자들에게 임할 심판이 더 무섭다는 경고입니다. (11:20, 눅 12:47) 복음이 선포되고, 이를 받아들일 때, 영생과 축복이 따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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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0장 : 16-20

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16 I am sending you out like sheep among wolves. Therefore be as shrewd as snakes and as innocent as doves.

본절은 ‘나’라는 말이 강조 됩니다. ‘너희를 파송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 내가 너희를 나의 대권자로 삼아 파송한다’ 는 소중한 의미를 담고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스스로 방어할 능력이 없는 제자들을 위험할 것을 아시면서도 파견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예수님 자신이 그들을 위험한 지경으로 보내시기에  가능하신 것입니다.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낸다는 것은 온순해서 타인에 해를 끼치지 않을 자신의 제자들을 냉혹하고 잔인한 세상에 파견하는 것을 말합니다. (7:15. 요 10:12, 행20:29) 예수님은 제자들이 복음 때문에 온갖 핍박과 거절을 당하고 생명까지 위험할 상황에 처할 것을 예견하셨습니다. 복음 사역자들은 고통과 박해 까지도 참고 견딜 준비가 되어야 됩니다(딤후2:9.) 잠시동안 이리가 양을 공격하는 것 같으나 결국은 복음의 파수꾼, 양이 승리할 것입니다.

‘뱀같이 지혜롭고’ 라는 말은 신중하고 분별력 있어야 된다는 고대 근동 지역의 속담이었습니다. 성경에도 뱀은 간교하고 신중한 동물로 묘사됩니다. (창 3:1, 고후 11:3) 예수님께서 이처럼 말씀하신 이유는 신중하게 분별하고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할 것을 당부 하신 것 입니다. 뱀은 보기에 징그럽지만, 자신이 위기에 처했을 때 매우 신속하게 위험을 벗어나 빠져나갑니다. 이처럼 생명을 노리는 악한 자들의 계교에서 속히 벗어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움에  순박함이 결여되면, 그 지혜는 쉽게 교활함으로 타락할 수 있습니다.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순결은 부패한 것과 혼합되지 않고 오염되지 않는 순수한 상태입니다. 순결은 솔직함, 순진함을 의미합니다. 비둘기는 미련하여 쉽게 속아 넘어가는 동물로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호 7:11). 순진한 자에게  지혜로움이 없다면 어리석고 무지한 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뱀같은 지혜로 핍박과 위험을 피하고, 비둘기 같은 순결로 핍박에 굴복하지 말아야 됩니다. 

 

17 사람들을 삼가라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17 'Be on your guard against men; they will hand you over to the local councils and flog you in their synagogues.

이리와 같은 악한 자들에게서 자신을 보호하라는 의미입니다. 불필요하게 위험 속으로 들어가지 말고 지혜롭게 분별하여 박해 받을 일을 피하라 하십니다. 공회[쉬네드리온]은 산헤드린 공회를 말하는데, 특히 지방의 의회들을 의미합니다. 이 지방의회들은 공공 질서와 치안유지를 책임집니다 (신 16:18). 질서를 어지럽힌다는 이유로 악한 자들이 지방의회의에 제자들을 고소하면,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의를 당부 하신 것입니다. 

 채찍질은 모세율법에 40대를 넘지 못하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신25:1-3) 막대기에 가죽줄을 세줄로 달아서 한번에 세대의 매질을 한 것으로 보고 13번 때려서 총 39번의 채찍질을 하도록 율법이 규정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같은 매질을 다섯번이나 당했습니다 (고후 11:24). 당시 회당에서 회당 회원들에게 치찍질하는 것이 빈번함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23:34, 행 22:19, 고후 11:24,25) 예수님은 교회가 만들어지고 회당의 영향력을 완전히 벗어날 때 까지 그의 제자들이 채찍질 당할 수 있다는 것을 미리 예견 하셨습니다. 

 

18 또 너희가 나로 말미암아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 가리니 이는 그들과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18 On my account you will be brought before governors and kings as witnesses to them and to the Gentiles.

18절은 17절의 종교지도자들과 비교되는 세속의 통치자 전체에 의한 핍박을 예견하십니다. 제자들은 앞으로 세상 법정에도 서게 될 것이고 복음이 전파되어 갈릴리 지역과 유대 민족을 넘어 전 세계에 전파될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복음을 전할 제자들에게 닥쳐올 일들을 미리 알고 계셨습니다. 예언대로 베드로는 네로 황제 앞으로 끌려갔고, 사도 요한은 도미티안 황제 앞에, 다른 사도들도 여러 임금들 앞으로 끌려 나갔습니다.  제자들은 여러 핍박과 탄압을 통해 복음을 전하게 될 것입니다. 

 

19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 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19 But when they arrest you, do not worry about what to say or how to say it. At that time you will be given what to say,

어떻게, 무엇을 말할까 하고 자기 힘으로 위기를 해결하려고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답변할 것을 염려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성령께서 역사하실 기회를 제공해 드리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예수님의 제자로서 순결한 영혼 그대로 염려를 주께 맡기라고 하십니다. 보내신 이는 하나님 이시기 때문입니다.

  답변이 필요한 ‘그때에’ 바로 그 순간에 인간의 대변자 이신 성령께서 ‘할 말’을 알려주실 것입니다. 고난의 시기에 제자들의 마음을 감동 시켜서  하나님께서 적절한 말을 주실것 입니다. 제자들은 대부분 어부, 서민 출신이라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자들 입니다. 관리나, 위정자 앞에서 위축되고 무엇을 말할지 난감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그들 앞에서 당당할 것이고 제자들의 입을 성령께서 주관하시고 해야할 말을 하게 하실 것입니다. 

 

20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20 for it will not be you speaking, but the Spirit of your Father speaking through you.

복음 사역은 인간의 의지나 이성적 판단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들 모두의 아버지 이신 하나님께서 보내신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이루어 질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이 먼 곳에 계시지 않는 나의 아버지이심을 알게 됩니다. 나의 고통과 죄악을 내버려두지 않는, 나를 사랑하시는 아버지가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을 내 아버지로 믿고 의지하는 모든 이에게 성령으로 내주하시며 우리를 도와주십니다(행 4:8, 13:9, 고후 13:3, 요 14:16,17).  삼위일체 하나님은 유기적으로 역사하는 은혜로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역사하심이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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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0장 21-22

21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는 데에 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21 'Brother will betray brother to death, and a father his child; children will rebel against their parents and have them put to death.

앞으로 제자들에게 미칠 박해는 혈연 관계에서도 일어날수 있다고 하십니다. 이는 인간으로서 가장 견디기 힘든 고통입니다. 혈육간 일지라도 부패한 인간의 악한 마음은 인륜의 기본을 부술 만큼 사악한 것입니다. 양보할 수 없는 영적 싸움 입니다. 그 갈등의 원인은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기에 양보할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이 예언은 로마의 네로 같은 폭군하에서 실제 일어났습니다. 제자들과 신자들은 화형당하거나 십자가형에 처해졌고 사자의 밥이 되었습니다. 악의에 차서 복음을 핍박하던 가족의 만류와 유혹에 굴하지 않고 그들은 끝까지 복음과 신앙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22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22 All men will hate you because of me, but he who stands firm to the end will be saved.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벧전 4:14), 그리스도로 인해 그들은 핍박을 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분의 삶을 따른다는 이유 때문에 세상과 가족에게서 핍박을 받게 됩니다.

‘모든 사람’은 ‘ 한명도 예외 없이 모든 사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인종, 피부색 , 사상에 관계없이 모든 부류의 사람들을 말합니다. 인간은 근본이 하나님과 적대 관계에 놓인 부패한 존재입니다. 그러니 어느 위치, 어떤 모습으로 살든지 모두 다 멸망 할 수 밖에 없습니다(롬 3:10). 그렇기 때문에  ‘의’(justice)에 대하여 분노와 적의를 품는 것입니다. 

  ‘나중까지 견디는 자’  ‘나중’은 생명이 끝날 때까지, 생명이 다하는 날 까지,  인내가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될때 까지 라는 의미입니다. 그들은 적극적 저항보다, 포기하지 않고 인내하며 버티어 나갔습니다. 참기 힘든 극심한 고난 속에서도 신앙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예수의 사람으로 남기를 원했던 그들은 진정한 승리자들 입니다. 

  ‘구원을 얻으리라’ 절대적이고 완전한 구원의 획득이 약속되었습니다 (눅 21:19). 예수님께서 육체적 생명의 잠정적 손실이 있더라도 마침내 전인격적인 생명의 영원한 보상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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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0장:23-27

23 이 동네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23 When you are persecuted in one place, flee to another. I tell you the truth, you will not finish going through the cities of Israel before the Son of Man comes.

‘ 박해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증거하기 위해서 자기 생명을 보존하라는 명령입니다. 제자들이 사려 깊고, 겸손하게 전도 할수 있도록 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순교를 강요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본문으로 알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는 한, 최선을 다해서 목숨을 보존할수 있는 장소로 피하라고 하십니다. 물론 예수님의 참 제자들은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보다는 목숨을 잃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는 지리적 의미가 아닙니다.  복음이 유대인에게 충분히 전해져서 그들이 개종 하게 되는 시기가 될 때를 의미합니다.

  ‘인자가 오리라’ 하신 이 말은 천국의 도래와 관계가 있습니다. 이 천국의 임재는, 현재 이미 임해 있지만, 아직 오지 않은 상태로 종말의 시기에 ‘인자가 오심’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선지자와 같은 입장으셨으나, 선지자들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그 분 자신이 종말론적 심판자이시고, 메시야의 통치는 축복과 진노속에서 모두 시작되고 있습니다. ‘인자가 오심’은 거듭하여 경고하던 심판이 마침내 그 천국이 임할 때, 유대인에게 내릴 종말론적 사건입니다.

 

24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24 'A student is not above his teacher, nor a servant above his master.

이것은 그 당시에 유행하던 격언으로 보입니다. 사제간의 도리는 항상 변함이 없습니다. 선생님인 자신이 욕설과 핍박을 받는다면 제자인 너희는 더 큰 핍박을 각오해야 하지 않겠느냐. 이 격언을 마음에 간직하면 어떤 고난을 당하더라도 불평하지 않고 잘 이겨낼 것입니다. 종에 대한 비유도 마찬 가지 입니다. 윗사람인 예수님 자신이 대접 받지 못하고 고난 당했으면 제자인 너희들도 같은 고난을 당하지, 더 나은 대접 받기를 기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25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

25 It is enough for the student to be like his teacher, and the servant like his master. If the head of the house has been called Beelzebub, how much more the members of his household!

고난은 제자들에게도 예수님과 동일한 상황으로 올 수 있음을 강조하십니다. 고난과 박해가 선생이 받은 것보다 제자나 종이 받는 고통이 더 클수 있다고 하십니다.선생의 고통만큼만 되어도 좋을 것입니다 (족하도다)

‘집 주인을 바알세불 이라’는 말은 유대인들이 한 말입니다.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보고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으로 귀신을 쫓아낸다고 비난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빈정거림을 반대로 이용해서 자신을 집주인으로, 제자들을 그 집사람으로 비유하십니다. 집주인을 바알세불이라고 비난하는 그들이 제자들은 더욱 더럽고 악한 이름으로 부르지 않겠느냐는 의미입니다. 선생을 이렇게 모욕하니 제자들은 얼마나 더 모욕하겠습니까?

 

26 그런즉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26 'So do not be afraid of them. There is nothing concealed that will not be disclosed, or hidden that will not be made known.

그러나,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아야할 이유를 말하십니다.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으니 두려울 이유가 없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고 거듭 강조하십니다. 제자들 앞에 필연적인 고난이 있을 지라도 언제나 완전한 보호와 위로를 약속하십니다. 박해자들이 제자들을 죽일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결코 제자들의 영혼까지 마음대로 하지 못합니다. 그들이 전하는 복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키실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믿는 자들은 어떤 핍박도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게 불신의 세계로 가서, 진리의 하나님 말씀을 전하면서 그들을 정복해야 됩니다.  두려움은, 사단이 믿는 자들을 넘어뜨리는 무기 중 하나이니 두려움을 버려야 됩니다.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다’는 말씀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보고 계신다는 의미의 격언 입니다.  (막 4:22, 눅8:17) 하나님께서 이미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니 제자들의 무죄함을 입증하실 것입니다 (전 12:14,롬 2:6). 하나님이 모든 것을 아시니 그들이 당한 고난은 올바른 평가를 받을 것이라는 확신으로, 제자들은 핍박과 멸시를 견뎌낼수 있었습니다.

 

27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말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27 What I tell you in the dark, speak in the daylight; what is whispered in your ear, proclaim from the roofs.

하나님의 성령을 통해 아무도 모르게 깨닫게 되는 그리스도의 진리, 이 하나님의 비밀은 비유와 같은 숨겨진 내용으로 제자들에게 먼저 가르치셨습니다. 이제 제자들은 이것을 두려움 없이 공개적으로 온세상에 전파해야 됩니다.

‘귓속말로’ 라는 단어를 사용한 이유입니다. 유대 율법학자들이 히브리어로 하나님의 율법을 설명할 때, 중간에 통역자를 두어 그를 통해서 일반 대중에게 율법을 가르쳤습니다. 통역자의 귀에다가 속삭이듯 말해면, 통역자가 히브리어 율법에 대한 설명을 대중이 알 수 있는 언어로 바꾸어 큰 소리로 전달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도 은밀한 방법으로 전달하신 진리를 제자들이 전세계로 전파하고자 하셨습니다.

유대인의 집위는 평평하여 이곳에서 묵상을 하거나 모임을 가졌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 부활전 까지는 그 가르침을 대부분 잘 파악하지 못했습니다(요 12-15). 그러나 예수님 부활이후 그들은 이 모든 비밀의 말씀을 이해했고, 최선을 다해 강력한 힘으로 공개적으로 말씀을 전파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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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0장 : 28-31

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28 Do not be afraid of those who kill the body but cannot kill the soul. Rather, be afraid of the One who can destroy both soul and body in hell.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은 현세에서 만 능력을 발휘하는 인간들을 말합니다. 죽음의 권세 아래 놓인 몸은 영혼과 비교할때 너무나 보잘 것 없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육체와 영혼을 가진 자 입니다. 영혼은 비물질적인 것이고 불멸의 것이니 영원을 해칠 권세를 자진 자는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니 두려움에서 완전히 탈피하라고 하십니다. 인간은 고난이나 죽음 앞에서 두려움을 느낍니다. 그러나 하나님 한 분만 생각하고 그 분만을 두려워한다면 이런 두려움은 다 사라질 것입니다. 하나님을 언제나 두려워 하는 자에게 세상은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것,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그것이 영원한 생명을 예비하는 참 지혜 입니다.

 

29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29 Are not two sparrows sold for a penny? Yet not one of them will fall to the ground apart from the will of your Father.

 ‘앗사리온’은 로마의 화폐단위로서 노동자의 하루 품삵에 해당하는 한 데나리온의 1/16의 가치를 가진 적은 돈입니다. 

  ‘참새’[스트루디아]는 매우 작은 새들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이 새는 아주 작고 매우 흔하고, 쉽게 얻을 수 있는 새입니다. 가난한 유대인의 식량이 되기도  합니다. 

‘너희 아버지’는 매우 극적인 표현입니다. 우주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바로 ‘너희 아버지’ 라는 사실을 제자들이 깨닫게 해주십니다. 

‘허락하지 않으시면’ 은 하나님께서 참새의 생존과 죽음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관여하신다는 의미입니다.우리가 흔히 보게되는 문제들이 우연히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살핌과 자비의 손길을 벗어난것은 아무것도 없고 하나님은 가장 보잘것 없는 참새조차도 지켜보십니다. 하나님은 하찮은 생명체도 관심을 가지고 자상한 배려를 하십니다.

 

30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30 And even the very hairs of your head are all numbered.

예수님은 ‘너희에게는’ 참새와 대조적으로 더욱더  보살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신바 되었으니’는 이미 옛적에 머리털을 세어두셨다는 의미입니다. 그 시기는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 전에 하나님은 이미 우리를 보살피고 계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들꽃과 작은 새와 우리 주변의 사소한 문제들과 보이지 않는 일까지 적용됩니다.

 

31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31 So don't be afraid; you are worth more than many sparrows.

‘두려워하지 말라’고 세번 말씀하십니다. 첫째는 모든 진리가 드러날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둘째는 박해자가 성도를 괴롭혀도 그들이 영혼까지 죽이지 못하니, 죽을 육신에 지나지 않는 박해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십니다. 셋째는 하나님은 일상사 모든 일을 다 알고 계시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십니다.

하나님은, 참새들 보다 훨씬 더 귀한 제자들과 하나님의 백성을 그냥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메시야이신  예수그리스도는 자신의 피와 생명을 주고 우리 죄를 대신해 죽으십니다. 그 분을 보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멸망 가운데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고 맡기신 의로운 사명을 행하라고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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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0장: 32-33

32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32 'Whoever acknowledges me before men, I will also acknowledge him before my Father in heaven.

  ‘나를 시인하면’ 을 직역하면 ‘내 안에서 시인하면’ 이므로 예수님과 연합된 상태에서 고백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주님 이심을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삶의 현장에서 고백하는 것입니다 (시편 66:16). 마음으로 예수님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공개적으로 그 사실을 시인하지 않으면 예수님의 제자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예수님을 메시야 라고 고백하는 자는 이미 그리스도의 영을 받고 그의 교훈을 마음 속에 간직하며, 생활로 표현하는 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를 주(Lord)로 시인하는 마음을 지녀야 되고, 사람들 앞에서도 그 사실을 고백하는 용기를 가져야 됩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는 성부 하나님의 초월적 권위와 무궁한 사랑이 나타납니다. 동시에 성자 예수와의 지극한 친밀감을 나타냅니다. ‘아버지 앞’은 모든 인간이 종말에 다다르는 곳, 심판의 장소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심판을 맡기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한 5:22).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서 우리가 행한 대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고린도 후서 5:10)

  ‘그를 시인 할 것이요’ 는 우리가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주님으로 시인하면 주께서 심판날에 우리를 그렇게 시인하실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시인 하신다는 것은, 우리를  예수님의 사람으로 인정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충성을 기뻐하시고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 중보의 기도를 계속해 주실 것입니다 (히브리서 7:25).

 

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33 But whoever disowns me before men, I will disown him before my Father in heaven.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은 사람 앞에서 주님을 부인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자신과의 관계를 인정하지 않고, 그분을 주님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고 그 분의 가르침에 순종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히려 주님을 비난하고 배척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약속이나 의무보다, 세상에 더 많은 관심과 세상 이익을 탐하는 상태입니다. 

‘그를 부인하리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는 자들은 마지막날에 심판받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부인한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서의 생명과 사랑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현세에서 예수님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영원한 미래가 결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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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0장: 34-37

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34 'Do not suppose that I have come to bring peace to the earth. I did not come to bring peace, but a sword.

예수님이 오셨던 그 시절의 사람들은 메시야가 오시면 정치적으로 해방되고 물질적인 번영이 올것 이라고 기대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잘못된 기대에 대해 지적하시고 예수님께서 오신 진정한 이유에 대해 설명하십니다.

 ‘화평이 아니요’를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이 불화와 반목을 일으키려 오셨다고 말하는 것으로 잘못 받아들이지 말아야됩니다. ‘화평’은 히브리어로 [샬롬]입니다. 헬라어로는 [에이레네]입니다. 예수님께서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다’ 라고 하신 말씀은, 유대인이 원하던 경제적, 정치적 목적, 외적인 평화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의 화목함 , 인간의 화목, 내적 평화를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원하던 ‘화평이 아니요’ 라고 하신 것입니다.

  ‘검을 주러왔노라’ 라는 말씀의 의미는 불의를 정복하고 악을 제거 하기 위해 ‘화평’이 아니라 ‘검’을 주러왔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메시야와 그의 통치를 거부할 것입니다. 그 나라가 완성되기까지 사생결단의 치열한 싸움이 끝없이 일어날 것입니다. 

 

35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35 For I have come to turn " 'a man against his father, a daughter against her mother, a daughter-in-law against her motherinlaw-

이 구절을 잘못 이해하면 가족간의 분쟁을 일으키러 오셨다고 오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앞으로 당하게 될 박해에 대해서 주의를 주시고 그런 핍박을 ‘두려워하지 말라’ 계속 격려해 오셨습니다. 이 말씀의 진의는 제자들이 주의 복음 을 전할때, 그들을 핍박하는 자들은 로마인이나 이방인이 아니라 같은 동족인 유대인들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유대인의 핍박을 받고 십자가형을 받으셨습니다 (요 7:3-5). 성도들도 믿지 않는 가족들에게서 미움을 받고  핍박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라도 성도들은 그들을 더욱 사랑하며, 그들의 모범이 되어야 됩니다. 예수님은 주의 말씀을 전하는 동안, 어쩔수 없이, 죄 가운데 있는 사람들과 심각한 갈등과 분열이 일어날 수 있다고 가르치려고 하신 말씀입니다. 

 

36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36 a man's enemies will be the members of his own household.'

가족은 가장 친밀한 관계여야 되지만, 가족내 분열이 일어나면 타인보다 더 심각한 감정적인 반발이 생깁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전할 때도 마찬 가지입니다. 믿지않는 가족들은, 아직 죄의 묶임 가운데 있기 때문에, 복음 자체를 극단적으로 저주하거나 거부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그들은 원래 살던 타성대로 살고자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전도자를 심하게 박해하고, 마치 원수 대하듯이 매몰차게 거절하고 남들보다 더 심하게 박대합니다.

 

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37 'Anyone who loves his father or mother more than me is not worthy of me; anyone who loves his son or daughter more than me is not worthy of me;

예수님은 다른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라고 가르치십니다. 주기도문 제 1구절을 연상시킵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은 제자의 당연한 의무이고 본분입니다. 이때 사용된 ‘사랑’은 [아가파오]라는 헬라어입니다. 이는 신적이고 윤리적인 사랑을 말합니다. 혈육간의 사랑은 [필레오]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아가페’의 사랑은 남녀간의 육적인 사랑이나 가족간의 애정을 넘어선 절대적 신뢰와 모든 것을 초월한 종교적 사랑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해서는 이 단어를 주로 사용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가 아니라 예수님을 ‘가장’ 사랑하는 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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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0장 :38-42

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38 and anyone who does not take his cross and follow me is not worthy of me.

십자가는 로마의 사형도구입니다. 죄수는 자기가 달릴 십자가를 지고 사형장까지 가야 했습니다(27:32). 로마 통치를 반대 하던 유대 반란군들을 십자가에서 처형 당한 일이 이미 여러번 있었습니다. 갈릴리 출신의 제자들은 이 십자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그 당시에 매우 불명예스럽고 치욕적인 죽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런 시련까지도 감당해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지셔야 할 십자가를 생각하시면서 이 말씀을 하셨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위해 고통과 죽음의 아픔도 인내하며 그리스도가 가신 길을 따라야 한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누구든지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자신이 감당할 만한 십자가 만을 지게 됩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감당할 수없는 십자가를 맡기지 않으십니다. 

 

39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39 Whoever finds his life will lose it, and whoever loses his life for my sake will find it.

’자기 목숨을 얻는다’는 것은 이 세상의 일시적인 생명을 얻는 것 입니다. 그것을 얻으려고 하다가 영원한 참 생명을 ‘잃는다’고 하십니다. 박해를 받는 상황에서 죽음을 피하지 않고,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해 생명까지 희생하는 자는 다시 생명을 풍성히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주를 위해 생명을 바칠때  그것은 죽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제물을 바칠 때도 그 제물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생명은 주안에서 거듭 태어날 것이고, 제물과 시간은 축복이 되어 되돌아올 것입니다.  

 

40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40 receives the one who sent me.

보냄 받은 자를 영접하면, 보내신 자를 영접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눅 10:16, 요 12:44,45, 행 9:4).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믿는 자는 자기를 보낸 자를 믿는 것이며, 자신을 보는 자는 자기를 보내신 이, 하나님을 보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요 12:44,45). 제자들은 예수님의 단순한 대리인이 아니라 예수님의 한 지체로, 예수님의 이름을 가지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이 계시므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것과 동일합니다. 제자들도 예수님의 말씀을 가지고 나아가서 자기 생각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자로 그리스도의 일을 하는 자들입니다. 

 

41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41 Anyone who receives a prophet because he is a prophet will receive a prophet's reward, and anyone who receives a righteous man 

because he is a righteous man will receive a righteous man's reward.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한다’는 것은 그 선지자를 단순한 동정이나 연민으로 대한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메신저로서, 선지자의 지위에 합당하게 대우한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선지자를 영접하면 선지자가 받게 될 상급을 같이 받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가르치는 하나님의 계명을 잘 따르고, 예수님을 온전히 믿고 받아들인 자를 ‘의인’이라고 대우 받습니다.

 

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42 And if anyone gives even a cup of cold water to one of these little ones because he is my disciple, I tell you the truth, he will certainly not lose his reward.'

‘작은 자’는 미천하고 소외된 자를 의미합니다.(18:6, 막 9:42) 본문에서는 선지자, 의인, 제자가 이에 해당됩니다. 이들은 세상에서 철저히 무시 당한 자들이기에, 작은 자라고 불렸습니다. 

 이 하찮은 작은 자에게   ‘냉수 한그릇이라도  주고 베푸는 자’는 복된 자입니다. 그 냉수는, 대접하는 자에게는 늘 하던, 별것 아닌 습관화된 선행일지라도, 목마르고 지친 자에게는 목숨을 구할수 있는 소중한 선물이 됩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이름으로 일하는 사역자를 환대하는 자들의 봉사를, 도덕적 선행 그 이상의  가치로 평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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