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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마태복음

마태복음 18장

by 갈렙과 함께 2023. 9. 30.

마태복음 18장: 1-11

1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1 At that time the disciples came to Jesus and asked, 'Who is the greatest in the kingdom of heaven?'

  그 때는 가버나움의 한 집에 계실 때입니다. 그곳에서 반 세겔의 성전세를 내신 때입니다.(17:24-27) 성전세는 매년 아달월 (태양력 2-3월) 15일경 한번씩 내는 것입니다. (출 30:11-16) 이 때는 예수님 께서 돌아가시기 (니산월 , 태양력 3-4월 14일경) 한달 전이고, 제 3차 갈릴리 사역을 마치고 유대로 들어가시려고 할 무렵입니다. 

  가버나움으로 오는 도중에, 제자들 ‘누가 크냐’에 대해서 서로 논쟁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막 9:33). 예수님께서 토론 한 것이 무엇이냐고 그들에게 물으시니 그들이 잠잠해지고 아무 말도 못했다고 합니다.(막 9:33-37).  바로 그때에 그렇다면, ‘천국에서 누가 크니이까’ 하고 질문 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눅 6:40-48) 그들의 논쟁에서 무엇이 잘못인지  알게 하시려고  2절 부터의 말씀을 하십니다. 

 

2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2 He called a little child and had him stand among them.

  예수님 이전 시대와 예수님 당시대도 어린이와 여자는 그 집의 재산 목록에 들어갔을 뿐 사람으로서 제대로 대접 받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도 하나님의 형상이 있음을 인정하시고, 그들의 순진 무구한 특성이 바로 천국 시민의 자격이 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작은 아이를 제자들 가운데 세우고, 그 아이를 안아주십니다 (막 9:36).

 

3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3 And he said: 'I tell you the truth, unless you change and become like little children, you will never enter the kingdom of heaven.

  ‘돌이켜’ [스트라페테]는 ‘스스로 돌이키다’는 의미로 순간적이고 결정적인 방향전환을 의미합니다. 이는 단순한 행동 변화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한 마음의 변화, 즉 참회하고 중생에 이르는 전 인격적인 변화를 말합니다. 

  ‘어린 아이와 같이 된다’는 것은 순결함이나 믿음의 이상형이라는 것보다, 겸손의 이상형으로, 사회적 지위에는 무관심한 상태를 말합니다. 아이들의 유치함을 말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겸손은 그가  연약하고 혼자 힘으로 살 수없고 부모의 품 안에서 평안하듯이 , 하나님의 뜻에 절대 순복하고 오로지, 그 분의 보호 아래서  살고자 하는 겸손함입니다. (골 4:11,12, 요일 5:14) 아이들은 자신을 과대평가하거나 비하하지 않고 솔직히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냅니다. 다른 이를 의심하거나 계산하지 않고 순수하고 단순한 마음으로 받아들입니다. 신뢰와 믿음이 그 마음 바탕에 있기에 이런 어린아이들이 천국시민의 모델이 됩니다.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4 Therefore, whoever humbles himself like this child is the greatest in the kingdom of heaven.

  어린 아이 처럼 겸손한 자라야 천국에 갈수 있습니다.

 

5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5 'And whoever welcomes a little child like this in my name welcomes me.

  겸손한 자, 낮은 자, 어린 아이 같은 자를 받아들이면 예수님을 받아 들이는 것입니다. 

 

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6 But if anyone causes one of these little ones who believe in me to sin, it would be better for him to have a large millstone hung around his neck and to be drowned in the depths of the sea.

 

 7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7 'Woe to the world because of the things that cause people to sin! Such things must come, but woe to the man through whom they come!

  어린 아이처럼 순수하고 겸손해서, 남을 의심하지않고 단순하게 받아들이는 깨끗한 마음을 가진 사람을, 나쁜 마음으로 오만하고 이기적인 생각으로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사람은 엄중하게 그 죄의 댓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그 죄의 중대함이 심연의 바다에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할 만큼 중대한 댓가를 치르게 되는 것입니다.

 

8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8 If your hand or your foot causes you to sin, cut it off and throw it away. It is better for you to enter life maimed or crippled than to have two hands or two feet and be thrown into eternal fire.

  손과 발은 유혹의 도구, 수단일 뿐입니다. 죄의 원인과 동기, 그 근원은 악한 마음에서 나옵니다. 이 경고의 말씀은 악한 생각, 죄의 유혹이 가득한 마음의 썩은 생각을 철저히 잘라내야 된다는 것입니다. 죄에 대해서는 철저하고 무자비하게, 손과 발을 잘라버릴 정도의 각오로 죄를 처리해야 그 자신이 성결한 삶으로 돌이킬 수있습니다. 

  영원한 불은 ‘지옥불’ 헬라어, [게헨나]를 말합니다. 히브리어 [게 힌놈]은 힌놈의 골짜기를 말하는데 이 곳은 우상 몰렉에게 자기 자녀를 제물로 바쳤던 곳입니다 (대하 28:3, 33:6). 요시야왕의 종교개혁 이후로는 불결한 곳, 부정한 곳으로 선언되어 쓰레기를 태우는 장소로 사용되었습니다. (왕하 23:10)

 

9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9 And if your eye causes you to sin, gouge it out and throw it away. It is better for you to enter life with one eye than to have two eyes and be thrown into the fire of hell.

  눈으로, 보는 것으로도 이미 그 마음은 죄짓는 생각을 할수 있고, 그후 죄짓는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애초에 죄를 짓게 할 원인이 되는 눈을 빼어버리는 심정으로 철저하게 악으로 부터 멀리해야 됩니다. 철저하게 죄된 생각이 들어올 길을 차단하는 것이 지혜로운 성도가 택해야되는  길입니다.  

 

10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10 'See that you do not look down on one of these little ones. For I tell you that their angels in heaven always see the face of my Father in heaven.

  다시 7절에 이어 ‘작은 자’를 언급하십니다. 세상에서 하찮아 보이는 미약한 존재 일지라도 하나님의 백성은 그 각자가 다 하나님 앞에 소중한 절대적 가치를 지닌 존재입니다. 세상에서 비천해 보이는 자라도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 권세를 소유한 귀한 존재들입니다. 결코 가난하고 비천하고 단순하고, 순수하고 어리석은 자들을 업신여기지 말아야됩니다. 그들 모두는 하나님의 소중한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도 그 각자의 영혼을 수호하는 천사를 보내어 보호하십니다. (시 34:7, 눅15:7-10)

 

11 (없음)

11 (emp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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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8장 12-20

12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만일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12 'What do you think? If a man owns a hundred sheep, and one of them wanders away, will he not leave the ninety-nine on the hills and go to look for the one that wandered off?

  

13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13 And if he finds it, I tell you the truth, he is happier about that one sheep than about the ninety-nine that did not wander off.

이 말은 잃어버린 양 가운데는 찾지 못할 양도 있다는 가능성을 내포합니다. 실제로 잃어버린 양이 자신을 찾는 주인의 애절한 음성을 외면하고 끝내 자기 고집대로 행동한다면 그 주인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자유 의지를 선한 방향으로 돌려 겸손하게 주인의 음성을 듣는 양에게는 주인은 어떤 댓가를 치르더라도 반드시 찾아내실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거룩한 집념입니다.  

 ‘ 더 기뻐하리라’는 것은 아흔 아홉 마리보다 한 마리를 더 아낀다는 뜻이 아닙니다. 길 잃은 양이 안전한 곳에 있는 아흔 아홉마리보다 더 불쌍한 존재이기에 상대적으로 더 큰 배려를 하신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병약한 자녀에게 더 큰 애정과 보살핌을 주는 것과 같습니다. 

 

14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14 In the same way your Father in heaven is not willing that any of these little ones should be lost.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영생을 얻기를 원하십니다. (딤 전 2:4) 하나님 나라에서 중요한 가치는 바로 그 자리에 참여하는 성도들입니다. 그러니 잠시 믿음의 길에서 벗어난 성도들을  찾아 나서는 것은 아버지의 뜻입니다. 이 작은 자 중에 하나라도 실족케 하는 자는 하나님께 큰 죄를 짓는 것입니다. 전체 양 떼 중 어느 하나라도 잃지 않도록 해야됩니다. 

 

15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15 'If your brother sins against you,go and show him his fault, just between the two of you. If he listens to you, you have won your brother over.

  유대인의 언어에서 ‘형제’라는 말은 ‘ 같은 종교를 가진 자,  같은 종교적 공동체의 일원’ 이라는 의미로 ‘믿음의 동료, 신앙의 동지’ 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메시야 공동체, 즉, 주를 따르는 무리 안에서 행해진 죄악에 대해서, 피해자의 입장에서 말씀하십니다.  이 죄는 하나님께 대한 근원적, 범죄가 아니라 신자 상호간의 도덕적 범죄를 말합니다. 다른 형제를 멸시한 행동을 말합니다.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라고 권고한 이유는 죄 지은 그 형제를 보호하기 위한 의도이고 그가 죄를 고백하면, 그를 용서하려는 시도입니다.  그의 죄가 무엇인지 깨닫게 하고 그의 잘못을 꾸짖고 돌이키게 함입니다. ( 요 8:46, 딤전 5:20, 고전 9:19-22 벧전 3:1) 이것이 죄지은 형제와의 화해를 위한 첫 작업입니다. (레 19:17)  그가 들으면 그는 형제가 됩니다. 이 과정에는 권고하는 자의 겸손한 마음과 인내와 지혜와 조심성이 필요하고, 무엇보다도 사랑이 가장 요구됩니다.

 

16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16 But if he will not listen, take one or two others along, so that 'every matter may be established by the testimony of two or three witnesses.'

 

17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17 If he refuses to listen to them, tell it to the church; and if he refuses to listen even to the church, treat him as you would a pagan or a tax collector.

  두 세 증인과 함께 권면하여도 그가 듣지 않고 무시한다면, 교회가 공식적으로 개입해야 됩니다. 세번에 시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는 , 각각의 교인들은 교회 차원의 친교와 교류를 일절 금하여 범죄한 형제와 더 이상 접촉을 피하라는 말입니다. 그와 접촉을 피하는 것은 ‘공동체로 부터의 소외’ 라는 무언의 압력을 주어 ‘ 죄지은 그 형제’ 가 다시 한번 회개와 반성의 기회를 주고자 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18 'I tell you the truth, whatever you bind on earth will bebound in heaven, and whatever you loose on earth will be loosed in heaven.

 

19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19 'Again, I tell you that if two of you on earth agree about anything you ask for, it will be done for you by my Father in heaven.

  ‘두 사람’은 예수의 제자된 자로, 연합할수 있는 최소한의 수입니다. ‘죄지은 자와 그로 인해 피해를 입은 자’의 경우는 그 두사람은 교회의 결정에 의해 상대방이 요구하는 권리에 대해 서로 일치되는 결론에 이르는 것으로 이것이 땅에서의 합심입니다. ‘ 두 사람’은 믿는 자들 가운데서 친교나 합의 , 합심으로 함께 하는 최소 단위로 이해됩니다. ‘합심’ 헬라어[심포네오] 는 교향악 (symphony)의 어원이고, ‘함께 어우러져 멋진 조화를 연출해 낸다’는 의미입니다. 두 사람의 일치는 성령의 역사에 의해 가능합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서로 합심한 자에게 각 개인에게 임재하시고 스스로 이해하는 두 영혼의 일치된 기도는 하늘 아버지께서 교회의 간구로 받아들이시고 교회의 특권에 합당하게 응답해 주십니다. 

  두 사람의 합심 속에는 성령께서 함께 하셔서 그들의 원하는 바를 하나님의 뜻에 일치 시킵니다. 이렇게 합심해 구하면, 무엇이든지 구할수 있고 이를 이루어주시는 은혜가 임합니다. 

 

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20 For where two or three come together in my name, there am I with them.'

  ‘내 이름으로 모인 곳’,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두세 사람이 모인 곳이면, 그 장소가 어디든지 예수님의 영이 임재하시겠다고 약속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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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8장: 21-27

21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21 Then Peter came to Jesus and asked, 'Lord, how many times shall I forgive my brother when he sins against me? Up to seven times?'

  본문은 현재의 죄 문제 (15-20)와 결부된 죄 용서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성도의 의무는 죄인을 권면하는 일과 죄인을 용서하는 일 양자를 조화시켜야 됩니다. 

  ‘용서하다’ 헬라어 [아페소]은 용서하는 사람과 관련된 죄악을 범죄한 형제로 부터 먼곳으로 보내다’ 는 의미입니다. 이는 악행자가 회개해서 우리에게 죄 자백을 하든 아니하든 상관없이 즉시 모든 악을 용서해야 한다고 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일곱번 까지 하오리까 라는 베드로의 제안은 당시의 문화적 배경과 관련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종교적 책무를 수치화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율법적 용서개념 ( 랍비는 3번만 용서하고 그 이상은 하지 말라고 함)을 능가하는 자신의 관대함을 자랑하듯이 완전수 ‘7’을 제안합니다.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22 Jesus answered, 'I tell you, not seven times, but seventy-seven times.

  예수님은 유대의 전통적 습관, 랍비의 가르침, 베드로의 제안도 거부하시고 당신의 권위로 용서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새 지평을 엽니다. 형제들 간의 용서는 횟수아 정도에 제한이 없다는 것이고, 기독교인들의 자비와 용서는 무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23 그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결산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23'Therefore, the kingdom of heaven is like a king who wanted to settle accounts with his servants.

  여기의 종은 일반적인 노예나, 하급관리가 아니라, 왕이 영토중 일부를 다스리고 그 수입을 왕에게 상납해야하는 지방 장관이나 영주로 보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신분 보다, 천국 상속자들이 얼마나 많이 죄 용서함을 받았는지 분명히 하기 위해 이런 예를 보이신 것입니다.  여기 제시된 ‘종들’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를 다스리고 지배 할 것을 위임 받은 우리 자신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결산’은 종말론적 심판의 자리를 상징하는 말입니다. 말세에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일생동안 자신들에게 맡기셨던 일들에 대해 결산을 해야 됩니다. (고후 5:10)  ‘임금’은 만유의 주관자요 심판주이신 하나님을 말합니다.

 

24 결산할 때에 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24 As he began the settlement, a man who owed him ten thousand talents was brought to him.

  달란트는 예수님 당시 유대와 로마사회에 통용되던 화폐단위중 가장 큰것으로 순금 34Kg에 해당됩니다. 1달란트는 1데나리온(노동자 한 사람의 하루 품삯) 의 약 6000배의 가치입니다. 일만 달란트는 최근의 가치로 천 이백만 달러이고 약 10억달러 이상일 것입니다. 유대 전역의 1년 세금이 겨우 800달란트 였으니, 이만 달란트의 가치가 얼마나 큰지 알 수있습니다. 이 액수는 하나님께 대한 인간 자신의 힘으로 도저히 갚을 수 없을 정도의 큰 죄악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빚진 자 [오페이레테스]의 빚은 미쳐 상납하지 못한 세금 같은 것으로이해됩니다. 이 빚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죄를 상징합니다.  

주께서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에도 ‘죄’ 는[오페이레마] 번역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이 죄악을 용서하시는 일에는 그리스도의 희생이 개입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화목제물로 드려서 사람의 죄악을 없애주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 덕분에 그 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 죄사함을 받았습니다.(엡 1:7)

  이 빚진자는 자발적으로 자신의 빚을 고백하지 않다가 타인에 의해 드러나서 데려옴을 당한 상태입니다. 

 

25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하니

25 Since he was not able to pay, the master ordered that he and his wife and his children and all that he had be sold to repay the debt.

  그 당시의 노예값은 약 1달란트가 최상이고 대부분 10분의 1달란트 이하였습니다. 가족을 다 팔아도 그 빚은 갚을 길 없는 수준입니다. 자신의 힘으로 갚을 길 없음을 인정하고 왕의 자비를 구할 목적으로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26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이르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26  "The servant fell on his knees before him. 'Be patient with me,' he begged, 'and I will pay back everything.'

  이 채무자는 그 막대한 빚을 갚을 시간을 간구하나 이는 그가 빚을 갚을 가능성이 있는 약속이 아닙니다. 그는 다만 왕의 노여움과 형벌을 피하려는 임기 응변 입니다.

 

27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27 The servant's master took pity on him, canceled the debt and let him go.

종이 겸손한 자세와 애절한 간구, 죄를 실토 했던 영향도 있지만, 빚을 탕감한 이유는 종의 태도가 문제가 아닙니다. 왕의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 (눅 15:20)’ 긍휼의 은혜가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불쌍히 여기고 놓아보내고 탕감하는 왕의 행위는 석방과 죄사함을 법적으로 인정한 것입니다. 

  이처럼 자신이 저지른 엄청난 죄악을 인정하고 용서를 간청하는 죄인에게, 하나님은  그가 죄에 대한 양심의 가책에서 해방죄게 하시고 죄에 대한 아무런 보상없이도 그를 의롭다고 선언해주십니다. 

 이러한 칭의는

 (1) 전적으로 하나님의 판단 ‘불쌍히 여기심’에 의해 행해지는 것이지 죄인의 간청으로 행해진 것이 아닙니다.

 (2) 이 한번의 선언으로 우리의 모든 죄는 단번에 탕감 받은 것입니다. 이 의인이 되는 자격은 우리의 지불 능력이 있고 없음, 죄의 크고 작음에 따라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죄에 의해 단 한 번의 선언으로 가능해집니다 (롬 8:33). 

 (3) 우리가 의인화 됨은대속 제물로서 그리스도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죄악을 용서 받았고 의롭게 되었는데, 그리스도의 대속 역시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사랑에 의한 것입니다. (요 일 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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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8장:28-35

28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한 사람을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이르되 빚을 갚으라 하매

28 "But when that servant went out, he found one of his fellow servants who owed him a hundred denarii.He grabbed him and began to choke him. 'Pay back what you owe me!' he demanded.

  그 종이 왕에게서 탕감 받는 은혜를 받고 나가면서, 감격의 눈물이 마르기도 전에 그는 이런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받은 은혤를 적절히 나눌수 있는 기회를 주신것은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그것을 저버리고 있습니다.

  1데나리온은 보명이나 일반 노동자의 하루 품삯으로 6000분의 1달란트입니다. 백 데나리온은 그가 빚졌던 1만 달란트의 60만분의 1에 불과합니다. 그가 진 빚과 비교하면, 계산할 가치도 없는 하찮은 금액에 불과합니다. 1만 달란트의 빚은 인간이 하나님께 지은 죄를 상징하는 것이라면, 일백 데나리온은 인간이 그 이웃이나 동료에게 범한 죄 정도를 상징하는 금액입니다. 

  그는  26절에서 자비를 구하던 것과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자신의 동료에게 난폭하고 매정하고 거만한 태도를 취합니다. 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한 인간의 비열한 속성을 보여줍니다. 목을 잡는 행동은 무자비한 극히 모욕적인 폭행입니다.

 

29 그 동료가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나에게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29 "His fellow servant fell to his knees and begged him, 'Be patient with me, and I will pay you back.'

  미완료 과거 시제를 사용하여 업드려 간구하는 동작을 계속함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동료의 부채는 100일 정도의 노동으로 갚을 수 있는 부채입니다. 그의 갚을 길 없는 부채와는 비교할 수 없는 소액입니다.

 

30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그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30 'But he refused. Instead, he went off and had the man thrown into prison until he could pay the debt.

  왕은 그의 빚을 탕감하고 놓아주었으나, 그는 동료를 옥에 가둡니다. 헐값의 노예라도 오백데나리온에 팔리는데 자신의 빚보다 더 많은 액수로 파는 일은 불법이었습니다. 더구나 일백데나리온 빚진 사람을 구속하는 것도 잘못된 일입니다. 자신은 왕에게 자기 빚의 지불기간을 연장해달라고 요청했던 자가, 동료의 채무연장은 거절하고 구속하였으니 그가 얼마나 냉혹한 지 알수있습니다. 사랑을 받은 자는 그 사랑을 다시 타인에게 돌려 주어야 되는데 이 사람은 참 사랑을 모독한 자입니다. 

 

31 그 동료들이 그것을 보고 몹시 딱하게 여겨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알리니

31 When the other servants saw what had happened, they were greatly distressed and went and told their master everything that had happened.

 

32 이에 주인이 그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32 "Then the master called the servant in. 'You wicked servant,' he said, 'I canceled all that debt of yours because you begged me to.

왕은 그를 두번째 다시 불러들여 정죄하고 심판하려 합니다. 이 지상에서 불의한 자, 형제 사랑을 외면 한 자는 언젠가는 이 두번 째 부름을 받게 될 것입니다. (사 63”4) 

 

33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33 Shouldn't you have had mercy on your fellow servant just as I had on you?'

  하나님께로 부터 받은 불쌍히 여김 (자비)을 받은 자는 타인을 불쌍히 여기는 것은 당연한 의무입니다. 그리하면, 하늘 나라의 관대한 보상 가 있게 됩니다. 이는 성도가 미래에 받게될 하나님의 자비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가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5:7)

 

34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

34 In anger his master turned him over to the jailers to be tortured, until he should pay back all he owed.

  자비를 받은 자가, 자비를 나누어야 할  당연히 할 의무를 다 하지 않고 동료를 학대하니 그는 처벌의 대상이 됩니다.

주인이 노한 것은 그가 부채를 갚지 않아서가 아니라, 빚을 탕감받는 은혜를 받고도, 자신에게 빚진 형제를 용서하지 않는 죄 때문에 노여워한 것입니다. 

 

35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35 'This is how my heavenly Father will treat each of you unless you forgive your brother from your heart.'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용서해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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