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약/마태복음

마태복음 15장

by 갈렙과 함께 2023. 9. 12.

마태복음 15장 :1-4

1 그 때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1 Then some Phas and teachers of the law came to Jesus from Jerusalem and asked,

  이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예루살렘의 산헤드린 종교회의에서 갈릴리로 파견된 일종의 종교조사단입니다. 그들은 전 지역에 영향을 미치는 예수님의 병고침과 가르침에 대해 조사하기 위해 파견된 자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실체보다는 예수님을 해치려는 모함의 구실을 잡고자 온 자들입니다. 

 

2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통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2 "Why do your disciples break the tradition of the elders? They don't wash their hands before they eat!"

  바벨론 생활이후 부터 유대교 랍비들은 고대로 부터 전승되는 세세한 생활 규칙들을 정비하고 집성하여 문서화했는데 그것이 장로들의 전통이 기록된 탈무드입니다. 탈무드는 (1)율법의 세부규정을 담은 ‘미쉬나’ (반복하라는 의미)와  (2) 율법규정의 교훈적 풀이 곧 미쉬나의 주석서 인 ‘게마라’ (보완이라는 의미) 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현재 탈무드는 ‘바벨론 탈무드’와 ‘예루살렘 탈무드’가 있습니다. 특히 ‘할라카’는 율법주위에 둘러쳐진 ‘울타리’라는 의미로 일부는 보세때부터 개개인에 의해 전래되었고 일부는 그것을 기초로만든 규칙 으로 613개나 됩니다. 이 ‘장로의 전통’은 외형상 별 문제가 없으나, 인간의 생각을 하나님의 계시와 동일한 수준으로 생각한다는 점과, 율법의 근본 목적과 정신을 버리고 외형적인 세부 규칙을 지나치게 상세히 규정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이 원하시는 순종과 사랑을 버리고 인간의 위선과 교만으로 지향한다는 것이 장로들의 전통이 가진 오류입니다. 

  식사 때 손 씻는 예법은 먼지와 모래 바람이 많은 팔레스틴의 풍토와, 손으로 음식을 집어 먹는 풍속 때문에 위생을 위해 마련된 것입니다. 이방인들과의 접촉, 길이나 시장에서 이방인과 스치거나 이방인의 물건에 닿았을 것이니 성전이나 회당에서 예배 의식의 정결행위에 방해가 된다는 것도 이유입니다. ‘야다임’ 이라는 소책자는 효과적 정결 의식을 위해 얼마만큼의 물을 사용해야하는 거라는 문제를 다룹니다. 예를 들어 ‘ 한사람이 한 그릇의 물로 한 손에 붓는다면 그의 손은 정결하다, 만일 한그릇의 물을 두 손에 붓는 다면  그 손이 불결하니, 1/4통 이상의 물을 더 부으면 그의 손은 정결하게 된다’고 세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3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

3 Jesus replied, 'And why do you break the command of God for the sake of your tradition?

  예수님 께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장로들의 전통과의 근본 차이를 분명히 지적하십니다. 인위적으로 율법을 해석하려는 장로의 전통보다는 , 하나님의 계명, 말씀, 그 자체, 율법의 정신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하십니다. 

 

4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비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거늘

4 For God said, 'Honor your father and mother' and 'Anyone who curses his father or mother must be put to death.'

율법의 제 5계명 출 21:17 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부모의 권위와 은혜를 무시하고 나쁘게 말하거나 저주하는  패역자들은 죽임을 당하거나 그 잘못을 보상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 불경한 말을 하는 것과 (레 24:16) 더불어 언어를 잘못 사용하여 극한 형벌을 당하는 두가지 죄 중에 하나입니다. (레 20:9)

 

—----------------------------------------------

마태복음 15장 :5-11

5 너희는 이르되 누구든지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5 But you say that if a man says to his father or mother, 'Whatever help you might otherwise have received from me is a gift devoted to God,'

  유대인들의  서약의 한 형식으로 부모를 부양할 물질을 하나님께 바쳤다고 하는 의미입니다. 이런 경우 하나님은 부모보다 더 크시므로 부모에 대한 의무는 면제됩니다. 막 7:11 히브리어[소르바] 은 하나님께 바쳐진 선물 (제물)을 말합니다. 이 봉헌의 맹세가 후대로 가면서 이기적으로 이용되거나, 왜곡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고르반이라는 말을 사용하여 맹세를 한 경우라면, 설령 그것이 부모를 부양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고 할 지라도  그 맹세를 취하할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이런 조건들을 이용하여 ‘고르반’ 맹세를 한 뒤, 그 맹세한 것의 일부만 성전에 헌납하고 나머지는 모두 자기 탐욕을 채우는데 사용하여 부모부양의 의무마저 저버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6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

6 he is not to 'honor his father' with it. Thus you nullify the word of God for the sake of your tradition.

  그들은 전통을 이용하여 부모를 공경하라는 하나님의 원 뜻을 취소하고 무효화하려 했습니다. 

 

7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 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7 You hypocrites! Isaiah was right when he prophesied about you:

  ‘외식하는 자’ [휘포크리테스] 원 뜻은 ‘대답자’ 입니다. 이것이 발전해서 ‘배우’라는 의미가 됩니다. 여기서는 자신의 본 모습과 겉모습이 다른 위선자라는 의미입니다.

  사 29:13을 축약 인용하여 바리새인들의 형식주의 종교를 책망하십니다.

 

8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8 " 'These people honor me with their lips, but their hearts are far from me.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을 완전히 떠나 있으면서도 입술로 공경한다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만 하나님을 섬기는체 하는 위선을 지적하십니다. 율법의 근본 정신인, 회개와 사랑 없이 율법의 문자적 규정만을 지키고는 의인척 행동하는 위선을 행합니다. 

 

9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9 They worship me in vain; their teachings are but rules taught by men.' "

  ‘사람의 계명’ 은 인간 자신의 방법에 의해 인본주의적인 발상에 의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위를 무시한채 아무리 외형이 화려한 경배를 드린다 해도 그것은 헛된 일입니다. 

  ‘헛되이’ [마텐]은 ‘열매없는, 아무런 목적이 없이’ 라는 의미로 잘못된 목표를 위해 수고 하는 것은 처음부터 목표가 없었던 것처럼 공허하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신앙에 근거하지 않는 외식적 종교적, 경배행위는 윤리적 결과가 없는 허무한 경배일뿐입니다.

 

10 무리를 불러 이르시되 듣고 깨달으라

10 Jesus called the crowd to him and said, 'Listen and understand.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계층차이를 근거로 사람들과 조금 거리를 두고 서있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예수님은 적대자와 논쟁을 마친뒤 무리를 불러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말에 미혹되지 않도록 종교와 윤리의 본질, 내적 정결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11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11 What goes into a man's mouth does not make him 'unclean,' but what comes out of his mouth, that is what makes him 'unclean.' "

  입으로 들어간 것은 음식이고, 입에서 나온 것은 말을 통해 표출되는 인간의 정서와 사상입니다.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위생적인 불결을 의미하지만, 그것이 도덕적인 의미를 가질수는 없습니다. 진정 인간을 더럽게 하는 것은 형식적 불결이 아니라 내면에서 나온 부도덕한 언행과 악한 인격이 주는 영향이 더 치명적인 것입니다. 

 

—---------------------------

 

마태복음 15장 :12-20

12 이에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걸림이 된 줄 아시나이까

12 Then the disciples came to him and asked, 'Do you know that the Pharisees were offended when they heard this?'

  제자들이 예수님께 말씀드린것은,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화가 났음을 아십니까?’ 라고 번역할수 있습니니다. 대부분의 유대인들 처럼 제자들도 종교지도자인 바리새인들을 존경했으니 , 그들을 그렇게 화나게한 예수님의 말씀의 진의를 정확히 알고 싶어 합니다. 우리가 진리를 말한 사람에 대해 분노하는 원인은 두가지 입니다. 1) 지금까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해 도전 하는것은 자신에 대한 배반이기 때문에 생기는 분노, (2) 자신의 판단이 거짓이고 불의하다는  사실을 끝까지 거부하고 진리를 말한 사람을 오히려 이단시하는 분노 입니다. 이런 자신의 왜곡된 모습을 끝까지 거부하고, 진리를 말한 사람을 오히려 이단시하는 태도  때문에 오는 분노 입니다. 이런 왜곡된 모습은 진리를 솔직하게 인정못하고 진리를 두려워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심은 것마다 내 하늘 아버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

13 He replied, 'Every plant that my heavenly Father has not planted will be pulled up by the roots.

  이스라엘 민족은 자신들을 하나님께서 심으신 식물 혹은 물댄 동산 (사 58:11), 하나님의 밭, 하나님의 토지  (고전 3:9) , 하나님의 포도원 (사 5:7)으로 생각해 왔습니다.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을 나무로 묘사하곤 했는데 특히 포도나무로 비유했습니다 (시 80:8) 어떤 상징이든지, 중요한 것은 심은 것마다 무성하게 자라려면  심은 이가 하나님 이어야 됩니다. 하나님의 본래의 말씀이 아니라 , 인간의 전통이나 유전에 따른 모든 잘못된 교리는 없어져야 된다는 것을 말하십니다. 

  동시에 유대 민족 종교지도자들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하나님께서 심으신 자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암시하십니다. 그들은 마치 가라지 처럼 심판 날에 파멸 당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14 그냥 두라 그들은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시니

14 Leave them; they are blind guides. If a blind man leads a blind man, both will fall into a pit.'

  ‘그냥두라’는 ‘그들을 가게 하라, 버려두다’라는 말입니다. 가라지를 ‘그냥 내버려 두라’는 말과 동일한 의미입니다. 진리를 분간하지 못하는 영적 ‘소경’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소경이라 합니다. (1)율법의 문자와 그 정신을 분별하지 못하고 문자적인 해석에 매달려 일평생 살아갑니다.  (2) 빛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참메시야로 알지 못하고 그를 대적합니다. 그들은 두 눈을 뜨더라고 영적 안목이 없으니 거짓과 파멸의 길을 가게 됩니다. 그들 자신과 더불어 그들의 가르침을 받은 백성들도 위험하게하고 멸망케하는 인도자입니다.

 

15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옵소서

15 Peter said, 'Explain the parable to us.'

 이 비유는 광의적으로 ‘ 이해하기 곤란한 말, 불가사의한 말’이란 의미입니다. 제자들과 백성들도 그 이유를 즉시 알지 못한 것은 그들의 뿌리 깊은 전통과 반대되는 말씀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오래 젖어온 편견으로 영적인 것과 의례적인 것을 혼동하고 있습니다. 

 

1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도 아직까지 깨달음이 없느냐

16 'Are you still so dull?' Jesus asked them.

 예수님의 기적과 교훈을 수없이 보고 배우고도  아직도 알지 못하니 예수님은 다소 충격을 받으신듯 책망하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순교 이후에도 완전한 영적 진리를 소유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성령이 임하신후 성령의 조명으로 완전한 깨달음의 사람이 됩니다.

 

17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버려지는 줄 알지 못하느냐

17 "Don't you see that whatever enters the mouth goes into the stomach and then out of the body?

  영적으로 둔감한 제자들에게 유치할 만큼 구체적인 실례를 들어 진리를 설명하십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물은 배로 들어가서 소화작용을 거친뒤 배설되니 사람의 마음 (인격)을 더럽게 하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모든 식물은 그 자체로는 깨끗한 것입니다. (막 17:19) 초대 교회에서는 음식물에 대한 유대의 율법에 대해 명확한 설명을 내지 못하고 분명한 입장을 취하지 못했으나  (행 10:9-16) 본문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까다로운 음식 규례를 폐지하는 것에 대해 보편적으로 동의 하게 됩니다. 이 본문이 기존의  유대 율법에 대한 문제를 바로 접근하는 새로운 길잡이가 되었습니다.

 

18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18 But the things that come out of the mouth come from the heart, and these make a man 'unclean.'

입에서 나온 모든 말은 그 사람의 생각과 의지의 근원인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악한 생각들은 결국 사람을 더럽게 하고 멸망으로 인도합니다. 마음은 지,정의, (知, 精, 意)가 있는 곳입니다. 이것이 있기에 인간은 짐승과 구별됩니다. (롬 9:2, 10:6, 고전 4:5)

 

19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19 For out of the heart come evil thoughts, murder, adultery, sexual immorality, theft, false testimony, slander.

 악한 생각의 목록은 막 7:21,22에 12가지로 기록되어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장로의 전통은 지키면서도 그 마음이 여전히 하나님의 계명 (6-9계명)을 지키지 않음을 빗대어 말하십니다. 제6계명 살인, 제 7계명 간음과 음란, 제8계명 도적질, 제9계명 거짓 증거, 그리고 신성 모독에 해당되는 예수님을 훼방하는 것 등의 죄가 악한 생각입니다.  예수님은 참된 종교란 외형적인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을 다루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20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

20 These are what make a man 'unclean'; but eating with unwashed hands does not make him 'unclean.' "

  내면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시는 것은 예수님의 일관된 주장입니다. 예수님은 불완전한 율법을 완성하러 오셨으나 (마 5:17)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은 극단적 형식주의와 위선에 빠져서 율법의 형식과 내용중 무엇이 더 중요한지알지 못할 지경이었습니다. 그들은 내면적 죄악보다, 외형적 더러움만 씻으려했습니다. 구태의연한 인격은 새롭게 변화되기 어렵습니다. 

 

—------------------------------------------

 

마태복음 15장:21-28

21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21 Leaving that place, Jesus withdrew to the region of Tyre and Sidon.

  예수님께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 논쟁을 벌였던 가버나움을 나가셔서 유대인의 거주지와 헤롯의 관할권을 벗어난 안전한 처소로 피하십니다. 

 

22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22 A Canaanite woman from that vicinity came to him, crying out, 'Lord, Son of David, have mercy on me! My daughter is suffering terribly from demon-possession.'

  이 가나안 여인을 막 7:26에는 ‘’수로보니게’ 여인이라고 했습니다. 시리아에 거주하던 페니키아인으로, 페니키아에 속하기 전의 고대명인 가나안족으로 이스라엘의 옛원수의 자손에 해당됩니다. 그녀는 예수님을 만나고자 고향을 떠나 이곳으로 왔습니다. 유대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기를 거부했으나, 불구자들과 , 이방인들은 예수가 메시야이심을 알고 순종하였습니다. 여인의 딸은 흉악하고, 위험한 병에 시달리고 있으니 구원해주시길 청합니다. 

 

23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23 Jesus did not answer a word. So his disciples came to him and urged him, 'Send her away, for she keeps crying out after us.'

  예수님께서 침묵하시는 경우는, 본문과 간음한 여인에 대해 예수님의 견해를 요구 받았을 때 뿐입니다.  이 침묵은 그녀가 자신을 메시아로 알고 있는지 시험을 하기 위함이고, 유대인의 불신과 이 여인의 환영을 비교하심이고, 이방인의 구원에 대해 잠시 침묵함으로서 여인의 인내와 믿음을 시험하십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응답받지 못할지라도 실망하지 말아야 됩니다. 주님의 침묵이 단순한 거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잘못된 간구가 아니라면, 올바른 간구는 하나님이 계획하신대로 선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제자들이 이 여인의 요구를 들어주고 빨리 보내라는 것은 동정심이 아니라, 단지 이여자가 귀찮아서 보내려는 이기심 때문입니다.

 

2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24 He answered, 'I was sent only to the lost sheep of Israel.'

  하나님께서 유대인을 중심으로 구속사를 정하신 것이기에 유대인들이 예수를 배척해도 예수님은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 자신은 유대인 사역에 힘쓰시고 제자들에게는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전도할 사명을 주셨습니다.

 

25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25 The woman came and knelt before him. 'Lord, help me!' she said.

  가나안 여자는 예수님의 냉대와 제자들의 만류에도 더 가까이 와서 무릎을 꿇고  예수님께 경배하고 계속 연속적으로 절을 합니다. ‘절하다’ 의 원어는  미래완료형으로 연속동작을 함을 나타냅니다.  간절하게 긴급하게 도와주시길 청합니다. 

 

26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26 He replied, "It is not right to take the children's bread and toss it to their dogs."

  자녀의 떡인, 이스라엘백성을 위한 하나님이 축복을 이방인에게 사용할 수 없다고 하십니다. 

 

27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27 "Yes, Lord," she said, "but even the dogs eat the crumbs that fall from their masters' table."

  이 여자는 이방인인 자신들이 선택되지 못한 족속이고, 권리를 갖지 못한 개 라는 사실을 시인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베푸시는 무한한 자비하심의 일부,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도 먹을 수 있지 않느냐고, 겸손하지만, 간절하고 굳건한 믿음의 질문을 합니다. 

 

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28 Then Jesus answered, 'Woman, you have great faith! Your request is granted.' And her daughter was healed from that very hour.

  ‘여자여’ 라는 말 앞에 감탄사 [오]가 붙어있습니다. 예수님의 놀람과 감탄을 그대로 표현한 것입니다. 

  ‘네 믿음이 크도다’에서  ‘믿음’은 그녀의 신뢰, 확신, 겸손과 인내까지 포함된 말입니다. 예수님께 칭찬받은 두번째 이방인입니다. 이 여인과 백부장이야기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1) 두 사람 모두 (백부장의 하인과 가나안 여자의 딸)에게 예수님의 병고침 능력이 베풀어졌습니다. (2) 두 이방인의 진실한 믿음이 예수님께 칭찬 받았습니다. 백부장에게는 이스라엘 중에는 백부장의 믿음 만한 것이 없다하셔고, 여인에게는 ‘네 믿음이크도다’ 라고 믿음을 중하게 여겨주셨습니다. 이 두사람의 사례로 구약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유대인으로 국한 되었으나, 신약에서는 예수님을 믿는 전세계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영적 선민론을 보이고 계십니다.

  ‘소원대로’ [호스 델레이스]를 직역하면, ‘원하는 만큼’입니다. 온갖 어려움을 인내로 극복한 가나안 여자에게 합당한 보상을 하시겠다는 예수님의 강한 의지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주님은 오늘도 난관을 인내하며, 주 앞으로 달려나와 하나님 만 바라보는 성도들에게 ‘네 소원대로 되리라’고 말씀해주십니다. 

 

—------------------------------------

 

마태복음 15장: 29-39

29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사 갈릴리 호숫가에 이르러 산에 올라가 거기 앉으시니

29 Jesus left there and went along the Sea of Galilee. Then he went up on a mountainside and sat down.

  예수님은 두로에서 나와 북쪽의 시돈으로 가신 다음에 다시 헤롯의 통치 영역 밖에 있는 갈릴리 호수 남동 쪽에 위치한 데가몰리를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렀습니다 (막 7:31). 이런 여정은 의도적으로 사악한 헤롯의 관할지역을 피해서 다니셨음을 보여줍니다. 이 장소는 유대 지경이 아닌 이방인의 땅입니다. 병고침과 수많은 무리를 먹이신 기적과 가나안 여인이 사건을 통해서 이방인들에게도 구원의 복음을 전하려 하십니다. 

  예수님은 산에 올라가 앉으셔서, 모든 사람들이 당신을 잘 볼수 있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찾아오는 자를 은혜로 맞아주시고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십니다.

 

30 큰 무리가 다리 저는 사람과 장애인과 맹인과 말 못하는 사람과 기타 여럿을 데리고 와서 예수의 발 앞에 앉히매 고쳐 주시니

30 Great crowds came to him, bringing the lame, the blind, the crippled, the mute and many others, and laid them at his feet; and he healed them.

   큰 무리의 사람들이 병자들을 인도해와서 주님 발앞에 내려놓습니다. 그들은 이 일을 반복적으로 진행하고 있고 무수히 많은 병자와 불구자들이 여러 곳에서 모여듭니다.

 

31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고 장애인이 온전하게 되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걸으며 맹인이 보는 것을 무리가 보고 놀랍게 여겨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31 The people were amazed when they saw the mute speaking, the crippled made well, the lame walking and the blind seeing. And they praised the God of Israel.

  마태는 이사야가 말한 모든 병의 종류를 언급합니다.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때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사 35:5,6)

 ‘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사 9:1,2). 이사야의 이 예언도 이루어집니다.

  ‘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고 기록된 것은 모여든 이방인들이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 놀라고, 그들이 이방인임을 드러냅니다. 예수님의 기적을 폅하하고 부정하던, 유대인들이 오히려 그들의 표현에 놀라게 됩니다.

 

32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

32 Jesus called his disciples to him and said, 'I have compassion for these people; they have already been with me three days and have nothing to eat. I do not want to send them away hungry, or they may collapse on the way.'

  예수님은 ‘무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먹을 것을 주고자 하십니다. 주님의 이런 불쌍히 여기심으로 인간 구원과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십니다 (눅 7:13). 이들은 사흘이나 예수님 곁에 머물며 예수님의 은혜 안에 머물고자 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으로 민족적 축제로 사람들이 모일때,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기진하거나 심하면 객사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이 지쳐 쓰러질까 염려하고 계십니다. 

 

33 제자들이 이르되 광야에 있어 우리가 어디서 이런 무리가 배부를 만큼 떡을 얻으리이까

33 His disciples answered, 'Where could we get enough bread in this remote place to feed such a crowd?'

  제자들은 오천명을 먹이신 일을 잊었거나, 부족한 믿음으로 인해 그들 앞에 닥친 문제해결을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하고 있습니다.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느냐 이르되 일곱 개와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나이다 하거늘

34 'How many loaves do you have?' Jesus asked.'Seven,' they replied, 'and a few small fish.'

  예수님은 그들을 야단치지 않으시고 주의 권능에 의지하도록 의도적으로 떡이 몇개 있는지 물으십니다.  이 질문은 두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1) 그들이 가진 물질과 재능과 소질의 가치는 신앙의 힘에 의해서 만,  참된 가치로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현재 가진 것에 대해, 놀라운 가능성으로 바라보시고 이것으로부터 변혁을 가져오십니다.  (2) 영적인 의미는 인간 영혼의  떡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지금 어느 정도인가를 물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믿음이, 많은 사람을 배부르게 하기에는 너무 부족한, 보리떡 일곱개와 물고기 두마리 정도의 믿음인 줄 아십니다. 그 믿음이 비록 겨자씨 만한 것일지라도, 그 믿음을 기초로 해서 더 큰 믿음을 이루겠다고 하십니다. 

 

35 예수께서 무리에게 명하사 땅에 앉게 하시고

35 He told the crowd to sit down on the ground.

36 떡 일곱 개와 그 생선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매

36 Then he took the seven loaves and the fish, and when he had given thanks, he broke them and gave them to the disciples, and they in turn to the people.

 그 부족한 떡 일곱개와 그 두어마리의 생선을 가지고 축사하시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감사드립니다. 그런 다음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고 제자들은 그것을 무리에게 나누어 줍니다. 믿는 자에게 일어난 이 기적은 믿지 않는 자에게는 허황된 이야기 라고 치부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는 만여명에서 이만에 가까운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그 기적을 믿음으로 향유했습니다. 이 기적을 믿는 자는, 오늘 자신의 평범한 일상 가운데 이 같은 기적이 재현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37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일곱 광주리에 차게 거두었으며

37 all ate and were satisfied. Afterward the disciples picked up seven basketfuls of broken pieces that were left over.

  그 자리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은 충분히 만족할 만큼 넉넉히 음식을 받았습니다. 그리고도 일곱 광주리가 남았습니다. ‘광주리’[스퓌리스]는 이 무리들이 유대인들이 아니라 이방인 임을 알게 합니다. 유대인들은 바구니[코피노스]에 자신들의 음식을 담아다녔습니다. 

 

38 먹은 자는 여자와 어린이 외에 사천 명이었더라

38 The number of those who ate was four thousand, besides women and children.

‘사천명’ 에서 ‘사’ 숫자 넷은 천지사방(天地四方 )을 말하는것이고 ‘천’은 숫자가 크고 많다는 의미입니다.  4000 (4 곱하기 1000) 은 세계성, 보편성, 광대성을 암시하는 숫자입니다.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은 이 세상 모두를 만족하게 하고도 남을 만큼, 풍성한 영적 생명력으로 우리를 채워주십니다.

 

39 예수께서 무리를 흩어 보내시고 배에 오르사 마가단 지경으로 가시니라

39 After Jesus had sent the crowd away, he got into the boat and went to the vicinity of Magadan.

‘무리를 흩어 보내시고’ 는 예수님 곁에 더 머물러 있으려고 하는 사람들을 설득하여 강제로 집에 돌려 보내셨다는 의미입니다.

 

'신약 > 마태복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태복음 17장  (0) 2023.09.25
마태복음 16장  (0) 2023.09.19
마태복음 14장  (0) 2023.09.05
마태복음 13장  (0) 2023.08.29
마태복음 12장  (0) 2023.08.18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