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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마태복음

마태복음 13장

by 갈렙과 함께 2023. 8. 29.

마태복음 13장:1-3

1 그 날 예수께서 집에서 나가사 바닷가에 앉으시매

1 That same day Jesus went out of the house and sat by the lake.

  예수님께서 천국 비유에 대해 말씀하신 ‘그날은’ 예수님의 모친과 형제들이 방문한 날입니다. 마태가 굳이 그날을 밝힌 이유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육신의 가족보다 영적 가족이 될 자들에게 천국 비유를 가르치시고, 죄인들을 당신의 가족으로 여겨주셨음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집에서 나가사’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찾아온 가족을 잠시 집에서 만나시고 다시 바닷가로 나오시는 장면입니다. 이 ‘집’은 갈릴리 가버나움에 있는 베드로의 집일 것으로 추측됩니다. 예수님은 집안에서는 구원된 무리들, 12제자를 중심으로 그 가족과 동료를 위한 제자 훈련에 힘을 쓰셨을 것입니다. 옥외에서는 많은 무리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시고 기적을 행하셨는데  그 장소는 산,바갓가, 길가, 뽕나무와 무화과나무아래 등 다양한 여러곳에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어느 곳 이든지 그 장소를 가리지 않고 부지런히 말씀을 전파 하셨습니다.

  디베랴 바다 혹은  게네사렛 호수라 불리는 해변가에 앉으셔서 천국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이 바닷가는 레바논산과 조화를 이루는 푸른 물로 풍경이 아름답습니다. 어업이 발달하여 이곳에서 소금에 절인 어류는 스페인까지 수출되었습니다. 디베랴,벳새다, 가버나움, 고라신 등의 많은 마을들이 형성되어 있는 장소입니다. 

 

2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여 들거늘 예수께서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온 무리는 해변에 서 있더니

2 Such large crowds gathered around him that he got into a boat and sat in it, while all the people stood on the shore.

  ‘무리’의 원어 [오클로스]는 단순히 많은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천민 집단, 속된 무리라는 일종의 가치 판단이 개입된 말입니다. [오클로스]는 유대교권주의자들이 율법을 잘 준수하지 않고 또 그럴 능력조차 갖고 있지 않은 낮고 천한 지위에 있거나 경제적으로 궁핍한 이들을 모욕적으로 부르는 말입니다. 히브리어 ‘땅의 백성들’ [암 하아레츠]에 해당하는헬라어 입니다. 주로, 예수께로 달려나온다거나 (13:2), 예수님을 찾아다닌다거나 (눅 8:40) 예수님의 전도여행에 동행하던 (막 5:27, 눅 7:9) 무리들을 지칭하여 당시의 정치 경제 종교적 상류층 사람들이 부르던 말입니다.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온 무리는 해변에 서 있더니’의 방법은 탁월한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특별한 음향 설비가 없던 시절에 예수님께서 택하신 이 방법은 수 많은 군중에게 육성으로 설교하기에 매우 효과적인 것입니다.

 

3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3 Then he told them many things in parables, saying: 'A farmer went out to sow his seed

  예수님은 영적 진리를 비유로 매우 적절히 가르치셨습니다. ‘비유’ [파라볼레]는 ‘곁에’ [파라]와 ‘던지다’[발로]가 합성된 단어입니다. 이것은 ‘옆에 던지다’라는 의미로 한 사물을 다른 사물 곁에 놓아 두고 대조, 비교하여 그 사물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게 하는 진리 교육의 한 방법입니다.

  ‘씨뿌리는 자’[ 호 스페이로]에서 대표 단수 정관사를 사용하여 어떤 계층 전체를 나타냅니다. 농사 짓는 모든 사람 , 농부를 말합니다. ‘씨뿌리는 자’는 천국복음을 전파하는 자를 말합니다. 이 비유는 씨뿌리는 방법보다는 씨 뿌려지는 밭으로 비유되는 사람들의 마음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씨뿌리는 자’는 세가지 의미를 함축합니다. (1)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 자신의 의지를 예언하면서 “내가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이스라엘과 유다의 집에 뿌릴날이 이르리라” (렘 31:27) 라고 선포했습니다. (2) 예수 그리스도 자신으로 밭의 종류를 보시고 엄청난 결실을 맺을 수 있는 사랑과 복음의 씨를 뿌리십니다. (3) 모든 기독교인들로, 귀중한 복음의 씨를  뿌린다고 하는 것은 먼저 예수님을 믿고 복음을 들은 자가 지닌 의무이자 특권입니다. 구원 받은 자녀들에게 주님은 “눈물을 흘리며 씨를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시 126:5라고 약속 하셨습니다. 사도바울도 성도들에게 신령한 씨를 뿌리라고 권고하였습니다. (고전 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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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3장 :4-7

4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4 As he was scattering the seed, some fell along the path, and the birds came and ate it up.

  ‘길가에 [파라 텐호돈] 을 직역하면 ‘길을 따라’입니다. 길은 많은 사람이 다녀서 흙이 딱딱하게 다져져 있습니다. 이 길은 마음의 문을 굳게 걸어 잠근 청중을 의미합니다. ‘길가’의 특징은  마음이 굳어져 새로운 씨가 자신의 내부에 뿌려질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인간의 영혼이 복음의 진리를 철저히 거부하는 이유는 두가지입니다.  (1) 의식적인 원인- 자신의 경험이나 학식만 최고라 생각하고 그것만을 고집하는 교만과 독선 , (2) 무의식적 원인 - 이 땅의 삶이나 목숨보다, 영생의 문제와, 복음의 중요함을 깨닫지 못해 아예 복음에 관심을 갖지 않으려는 무지와 태만 때문입니다. 

  ‘새’ 새는 유대땅 어디서나 쉽게 볼수 있는 ‘참새매’인데, 레 11:16과 신 14:15에 부정한 새로 분류된 새입니다. 이 새가 상징하는 악한 자, 사단은 공중 권세를 잡고 있으며, 복음의 씨앗을 자신의 내부로 받아들이지 않고 방치하거나 나중일로 미루어 지체하게 합니다. 그로인해 사람들이 진리를 경험할 가능성을 갖지 못하게 하는 자 입니다. 인간이 받아들이지 않은 복음의 씨앗은 악한 자에 의해 신속히 제거됩니다. 마음이 길가 밭 같은 자는 씨앗을 거부했을 뿐이지만, 그 결과로 인해 선과 악, 하나님과 사단, 천국과 멸망의 길이 그 씨앗하나를 거부함으로 결정납니다. 

 

5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5 Some fell on rocky places, where it did not have much soil. It sprang up quickly, because the soil was shallow.

   ‘흙이 얕은 돌밭’은 팔레스틴 지역에 매우 흔한 지형입니다. 석회석 지층 위에 얇은 지표가 형성되어 있어, 바위의 온기로 뿌리가 쉽게 나오지만, 흙이 깊지 않으니 뿌리가 계속 성장 할 수 없는 곳입니다. ‘씨가 뿌려진 길가’와 같은 사람들은 진리를 전혀 인식하거나 파악하지 못하는 자들 이지만 ‘흙이 얕은’ 장소는 복음의 진리을 받아들이는 신앙 인격이 경박하고 천박한 것을 말합니다, 이들은 빨리 행동하나 지속적이지 못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만나는 표면적, 얕은 심성 경박한 유형의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복음이 진리를 성장시키기 위한 영적 토양이 부족한 상태에 있으니, 선한  목적을 추구하여도, 선한 열매를 거두기가 어렵습니다. 

 

6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6 But when the sun came up, the plants were scorched, and they withered because they had no root.

  ‘해가 돋은 후에’ 신앙인이 되어 일상적인 신앙생활이 시작된 후라는 의미입니다. ‘해’는 씨가 돋아 난후에 계속 자랄수 있도록 도와주는 각종 연단과 훈육을 말합니다. 해는 당연히 치러야할 운명을 말하고 7절의                ‘가시’는 자신의 욕심, 염려로 발생하는 불필요한 시련을 말합니다. 

얕은 돌밭은 겉은 부드러우나 그 속은 아직도 깨어지지 않은 나약한 상태의 심성을 지닌 사람을 말합니다.  겉 마음은 경박하지 않지만, 속마음이 성력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아집과 주장으로 가득한 상태의 사람을 말합니다. 이런 밭은 복음의 뿌리가 쉽게 내려지지 않습니다. 성실하고 끈기 있는 신앙생활이 요구 될때 , 시련이 닥치면, 그 복음의 씨는 쉽게 말라버립니다. 

 

7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7 Other seed fell among thorns, which grew up and choked the plants.

  ‘가시떨기’ [아칸다]는 ‘열매가 없어서 쓸모 없는 것’을 가리키는 말에서 유래된 것으로 건조한 팔레스틴에 200여 종이 있습니다. 가시는 악을 행하는 자 (삼하 23:6) 이스라엘의 적 (민 33:55, 수 23:13) , 저주 (창 3:18), 황폐함(사 9:18)등으로 상징 됩니다. ‘ 가시떨기’는 천국복음을 방해하는 장애요소로, 복음의 씨를 자라지 못하게 하는 모든 것입니다. 

가시 떨기밭은 가시가 자라날 정도의 지력이 있는 곳이지만, 생장력이 강한 가시나무외에 다른 식물은 함께 잘라수 없는 거친 땅입니다. 주를 알고 믿은 지 오래 되었으나, 의와 사랑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성도들 대부분이 이런 부류의 땅에 해당됩니다.

  ‘기운을 막았고’ 는 헬라어 의 문자적 의미는 ‘숨을 막아 질식 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영적인 의미로는  이 ‘숨’ 또는 ‘기운’ [프뉴마]에 해당하는 말로 ‘성령’의 의미가 있습니다. 가시떨기가 ‘기운을 막았다’ 함은 믿는 자들이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루어 갈 모든 영적 생활을 방해하거나, 혼돈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길가 밭, 돌밭은 주로 밭의 내부가 문제이나, 가시밭은 밭의 외부가 문제 됩니다. 이 경우는 마음 밭 자체는 쓸만한데, 그 마음 밭에 영적 성장에 장애가 될만한 부정적인 씨앗이 더 많은 것이 문제 입니다. 우리가 열매 맺는 좋은 밭이 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마음 밭 내부도 좋아야 하지만, 외적으로 각종 신앙적 장애를 극복해 나갈  기운찬 영적 생명력과 진취성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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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3장 : 8-11

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8 Still other seed fell on good soil, where it produced a crop-a hundred, sixty or thirty times what was sown.

  ‘좋은 땅’에서 ‘좋은’ [칼로스]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도덕적으로 선한 상태를 말합니다. 좋은 땅은 기름지고 수분이 충분하고 햇볕이 잘드는 곳에 있어 지력이 보존 된 장소로 씨앗의 성장에 불필요한 것이 제거된 순수한 땅입니다. ‘좋은 땅’은 진리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믿음이 깊고 성실한 자, 신앙의 원칙이 분명한 자 (fixed principle) 진실하고 순박한 자입니다. 

  좋은 땅에 뿌려진 씨앗은 놀랍도록 풍성하게 수확됩니다. 삼십배는 가장 적은 결실이고 육십배는 중간이고 백배란 수는 최고의 결실이라는 상징적 숫자일 뿐입니다. 때로는 200배 300배의 결실을 볼수 있습니다.

  ‘결실’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 결실은  내적으로는  복음의 씨를 받은 각 성도들이 영적 진보를 이루는 것과, 외적으로는 예수님의 구속사가 펼쳐져서 천국 시민의 숫적 증가를 되는 것을 말합니다.

 

9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9 He who has ears, let him hear.'

  사람들이 예언자를 통해 전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지 못하는 이유는 그 귀가 할례 받지 못함이고, 그러니 그 말씀을 욕으로 여겨서 즐겨 듣지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렘6:10) 이런 경우 그들은 영적 귀머거리입니다. 

  ‘귀있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들을 수 있는 분별력 있는 자이고 그 말씀에 순종하려는 마음을 준비하는 자입니다.

 

10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어찌하여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10 The disciples came to him and asked, 'Why do you speak to the people in parables?'

  막 4:10절에 ‘함께 한 사람들이 열 두 제자로 더불어…’ 라는 평행귀절이 있으니. 이들은 일반 군중 속에서 소수제자들 만이 예수께 

찾아 왔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그들은 예수님 앞에 나오기까지 예수님을 찾아다니는 수고의 과정과 (연단) , 바닷가에서 예수님 말씀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까지 참고 기다린 뒤 (인내) 그들이 이해하지 못한 것을 알고자 예수께 나아와 질문을 하고 (적극성), 그들은 천국도래에 대한 비밀을 알게 되었습니다.

 

11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11 He replied, 'The knowledge of the secrets of the kingdom of heaven has been given to you, but not to them.

  ‘비밀’의 히브리어 [소드]는 천상회의 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하나님의 계획 혹은 하나님의 뜻이고, 은밀한 말로 전달되기도 하고, 선택받은 자만이 알수 있는 것이며, 항상 종말론적 사건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비밀’은 천국에 관한 내용이 문자 그대로 ‘닫아둔 것’ [뮈스테리온]임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천국에 대한 것은 인간 스스로 결코 알수 없는 것으로 오직 그것을 열기전에는 알지 못하는 영역의 진리임을 전제로 한 표현입니다. 본문에서 천국비밀의 내용은 ‘하나님 나라가 올 것’ 이라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천국의 비밀은 유대인들은 상상할수 없는 천국이 역사안에 이미 도래되었다는 사실, ‘하나님 나라가 왔다’는 놀라운 소식을 의미합니다. 

  ‘너희’는 12제자와 함께 주께로 모여든 소수의 무리들, 영적의미로 남은 자 (remnant)하나님의 은혜의 영역 안에 있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외인들로 은혜 밖에 있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이런 반박을 할 수 있습니다. 어차피 우리는 비유를 깨닫는 은혜를 허락받지 못한 자들이니 비유를 못 알아듣는 것은 우리 책임이 아니다라고 반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은혜 밖에 있음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혜주시기를 싫어하셔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요 3:16, 딤전 2:4, 벧후3:9), 오히려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거역했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를 깊이 생각하면, 우리는 신학의 핵심인 하나님의 의지와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엡 1:3-13), ‘그들’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대략 다음 두부류로 나눕니다. (1) 주어진 은혜의 말씀에 대해 적대시 하는 유대교권주의자들 (2) 병고침과 오병이어의 기적만을 기대하고 모여든 군중들 입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 나라 잔치에 참여치 못하고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김을 당할 것입니다. (25:30)  . 성도는 예수 님 밖에 있는 ‘그들’의 자리가 아니라, 예수님 안에 있는 ‘너희’의 자리에 있도록 늘 힘써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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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3장 : 12-15

12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12 Whoever has will be given more, and he will have an abundance. Whoever does not have, even what he has will be taken from him.

  ‘있는 자’ 와 ‘없는 자’에 대한 이 말씀은 물질에 대해 일어나는 객관적인 현상을 그대로 영적 차원에서 비유적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영적인 진리를 깨달은 자는 더욱 더 깨닫게 되고, 진리를 거부한 자는 오히려 더 욱 더 비참해진다는 사실을 말하신 것입니다.

‘있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로 받아들이는 자이고 ‘없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거나 천국의 비밀을 깨닫지 못하는 자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들 모두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었고’ 예수님의 기적을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없는 자’는 그가 보고 들은 것을 통해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고 메시야이시고 , 하나님 나라가 이미 도래했음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깨닫고 믿는 ‘있는 자’ 에게는 그 나라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고 영생이 보장됩니다. 

 

13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13 This is why I speak to them in parables: 'Though seeing, they do not see; though hearing, they do not hear or understand.

  그들은 있는 그대로 말해 주어도 알아듣지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기 깨닫지 못합니다. 보는 것(seeing)이 그대로 아는 것(knowing)이 되지 못하고, 듣는 것(hearing)이 바로 깨닫는 것(perceiving)이 되지 못하니, 결국 영적 불구자 같은 상태가 됩니다. 영적 소경 (사 59:10, 막 4:12, 요 12:40, 롬 11:25, 영적 귀머거리 (렘 6:10, 슥 7:11, 행 28:26) 인 죄인의 영혼 상태가 됩니다. 

 

14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14 In them is fulfilled the prophecy of Isaiah: " 'You will be ever hearing but never understanding; you will be ever seeing but never perceiving.

  이사야 6:9, 10절의 예언입니다. 스스로 자신의 자유의지 (free will)에 따라 완악해진 인간은, 하나님이 그대로 방치해 두시겠다는 구체적인 의지를 표명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작정하심과 인간의 자유 의지 사이에 심각한 차이가 있음을 생각하게 합니다.  

  ‘이루어졌으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동사의 시제는 현재 완료형이 아니라 진행형입니다.  이사야의 이 본문은 예수님 자신의 시대 까지 적용되고 있으니, 예언적 본문이 된것이라는 예수님의 해석입니다. 동시에 이 동사는 진행형으로 현재의 우리들에게도 이 말씀이 계속 적용되기 때문에 일부 사람들이 복음 선교를 거부하는 원인과  결과가 일어난 이유를 이해하게 됩니다. 

 

15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15 For this people's heart has become calloused; they hardly hear with their ears, and they have closed their eyes. Otherwise they might see with their eyes, hear with their ears, understand with their hearts and turn, and I would heal them.'

  ‘완악하다’는 헬라어 [파퀴노]는 살이 찌고 둔하여진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자기 사상과 자기 의지에 의해 스스로 살찐 자가 되어서 영적 감수성을 상실한 상태를 말합니다. 인간이 자기 (육체적 삶) 중심적일때 필연적으로 하나님 (영적 생명력)과의 관계는 단절, 상실되고 맙니다. 이렇게 되면 허무와 절망으로 빠집니다.

  ‘둔하고’ 의 원뜻은 ‘눌러 내리다 (oppress), ‘짐을 지우다’ ( burden), ‘가리우다’(curtain) 입니다. 귀가 먹거나 말귀를 못 알아 듣는 것이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듣지 않으려고 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감다’ 의 원뜻은 ‘내리닫다’라는 의미로 눈에 밀납이나 기름을 발라서 억지로 감기게 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여기서는 스스로 눈을 감아서 진리 보는 것을 완강히 거부하는 자를 표현합니다.

  ‘돌이켜’ 는 하나님 보다 세상을 사랑하던 사람이 그의 전존재를 하나님께로 다시 복귀하는 행동을 말합니다. ‘회심’ 혹은 ‘회개’ [메타노이아]와 같은 의미입니다. 이 ‘돌이킴’은 신앙생활에 들어가는 제 1단계로 자신의 죄에 대한 자각 (고후 7:10)과 제 2단계 새생활로의 전반적인 변화 (막 1:15, 눅13:3, 행 2:38) 로 이루어집니다. 1단계 자각은 죄된 인간 자신의 반성과 회개에 의해서만 가능하고 2단계 새로운 변화는 하나님께 ‘고침받게’ 되기 전까지는 사실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일차적인 문제는 인간 스스로 돌이킴 (자각)이 필요합니다 (눅 15:17). 하나님께서 죄에 대한 자각조차  없는 완악한 이스라엘이 자신의 길을 그대로 가도로 허락하심은 그들을 벌하고자 결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사야의 본문은 두려워하는 주체가 하나님 자신 인것과는 다르게 본문에 인용된 이사야 예언은 백성들이 스스로 돌이키게 되고 하나님으로부터 고침받게 될 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고침 받지 않으려고 스스로 눈을 감고 귀를 닫았습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으로 부터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증거를 접하고도 그를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는 행위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유대인에게 먼저 전해지고, 이방인에게 나중에 전해야되나, 유대인들이 이를 거부하니 스스로 멸망을 자초합니다. (행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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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3장 : 16-23

16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16 But blessed are your eyes because they see, and your ears because they hear.

  단순히 보고 듣는 육체적인 행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보고, 듣는 사건에 대해 의미를 탐구하고, 받아들이고자 하는 영적 의미와 감수성를 말합니다. 보고 들은 대상은 11절의 천국의 비밀입니다. 그 비밀의 구체적인 내용은 메시야의 나라가 우리의 삶 가운데 들어오고, 하나님의 통치 (주권)에 의해서, 예수를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무리들 (국민)을 규합하여 이 세상에서 새 하늘과 새 땅 (영토)에 이르게 합니다. 메시야의 나라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16절은 개인적인 관점에서 지금 주어진 천국의 비밀을 깨단든 자는 복이 있다고 합니다. 17절은 구속사적 관점에서 말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메시지를 듣는 자들, 믿음으로 받는 자들, 예수님의 말씀과 행위를 깨닫는 자들은 복이 있는 자입니다.

 

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17 For I tell you the truth, many prophets and righteous men longed to see what you see but did not see it, and to hear what you hear but did not hear it.

  ‘진실로’는 헬라어 [아멘] 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어우러지는 일, 즉 축복이나 저주등을 수락하고 확증하는 것 (대상 16:36), 송영에 답하여 하나님께 대한 찬양을 입증(대상 16:36)하기 위해 기도와 송영의 끝에 붙여 사용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과 행위 그리고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찬양이 타당한 것이고, 구속력이 있는 것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말을 당신이 특히 강조하고 싶은 내용 앞에 사용하여 이 후에 말씀의 진정성(verity )과 진실성 ( truth )을 미리 확증해서 우리를 각성시키고자 하실 때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고대하던 선지자와 의인들은 보지도 듣지도 못한 것을 메시야를 영접했던 사람들과 그 이후의 신약시대 우리들은 믿음의 선진들이 열망했던 그 영광스런 특권의 실질적 수혜자가 되었습니다 (벧전 1:10-12) 우리에게는 더 많은 감사와 더 많은 책임이 요구됩니다. 더 많이 받은 우리에게 더 많은 책임이 따릅니다. 

 

18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18 'Listen then to what the parable of the sower means:

  ‘그런즉’은 구약의 선지자들과 의인들이 원하던 영적 진리가 너희에게 까지 확대되었다는 측면에서, 너희는 반드시 들어야 된다는 강조 구절 입니다.

 

19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

19 When anyone hears the message about the kingdom and does not understand it, the evil one comes and snatches away what was sown in his heart. This is the seed sown along the path.

  아무나 [판토스] 는 ‘모든 것’, ‘모든 사람’을 가리키는 말인 ‘파스’의 속격입니다. 본문에서는 ‘들으면서’ 와 ‘깨닫지 못하는’ 이라는 두 분사를 택해서, 여기서는 ‘누구든지 들으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이라는 의미입니다.

   ‘길가에 뿌려진 자’는 말씀을 아직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전혀 되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는 그것을 들으려고도 하지않고, 전혀 반응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20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20 The one who received the seed that fell on rocky places is the man who hears the word and at once receives it with joy.

  이들은 ‘심지가 굳지 못한 경박한 마음의 청중 , 감정적인 청중입니다. 

 

21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21 But since he has no root, he lasts only a short time. When trouble or persecution comes because of the word, he quickly falls away.

  뿌리가 없으니 잠깐 믿는, 인격적인 확신이 결여된 상태입니다. 살다보면 만나는고난과 거친 돌에 바로 넘어지는 자입니다.

 

22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22 The one who received the seed that fell among the thorns is the man who hears the word, but the worries of this life and the deceitfulness of wealth choke it, making it unfruitful.

  이런 사람은 자신의 내부적인 문제와 갈등이 아니라, 주위 환경, 물질적 유혹들을 극복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토양은 비옥하나 순수와 세속이 혼재된 사람의 분열된 심적 상태를 말합니다. 그런 자는 하나님과 세상의 재물을 겸하여 섬기는 사람이고, 세상의 유혹에 귀기울이기에 하나님의 말씀이 그 안에서 자랄수 없습니다. 세속에 물든 청중입니다. 이런 자는 영적 성숙에 이르지 못합니다. 

 ‘ 세상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막혀서 목숨을 위해 무엇을 먹을 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 까 (눅 12:22) 생각하느라 영원한 세계에 관심이 없습니다. 

  세상 욕심으로 ‘말씀이 막히면’ 영혼은 숨쉴수 없고 질식됩니다. 결실을 하기 위해서는 천국 복음을 받아들이고, 한 인격안에 복음이 내재하여 생명력 을 가지고 성장해야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23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23 But the one who received the seed that fell on good soil is the man who hears the word and understands it. He produces a crop, yielding a hundred, sixty or thirty times what was sown.'

  말씀을 진지하게 듣고 순종하는 겸손한 마음을 가지면, 성령의 열매를 풍성히 거두게 됩니다. (갈 5:22,23) 이런 자들이 성공적인 청중들입니다. ‘말씀을 듣고 깨닫는자’는 철저한 자기 부인과 겸손한 수용으로 복음을 내재하여,  합당하게 생활하며 영적 결실을 거두는 자입니다. 이런 자는 백배 풍성한 열매를 거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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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3장 : 24-30

24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24 Jesus told them another parable: 'The kingdom of heaven is like a man who sowed good seed in his field.

  ‘ ~과 같다’는 말은 아람어의 관용적 표현으로 ‘A의 경우는 C의 경우와 같다’라고 사용됩니다. 예수님 말씀은,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의 상황(경우)과 같으니’ 라는 의미입니다.  본문의 좋은 씨는 마지막 날 주님의 심판에 직면해야 되는 성도를 상징합니다.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은 인자 이십니다 (37절) 인자는 예수그리스도 이시고, 예수님은 세상에 대해서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하시는 말씀입니다.  주의 몸된 교회뿐아니라,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 입니다. (시 24:1) 그러니, ‘제 밭’이라는 말은 바로 창 1:1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말과 동일한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만드시고 그 세상에 대해서  항상 관심을 기울이고 세상을 보호하고 가꾸십니다. 

 

25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25 But while everyone was sleeping, his enemy came and sowed weeds among the wheat, and went away.

   악한 어둠의 세력은 안식의 시간인 밤에 활동합니다.  농부의 원수도 상대방을 해치려고 가라지 같은 잡초 씨앗을 덧 뿌리고 갔습니다. 

  가라지 [지자니온] 은 ‘가짜 밀’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싹의 모습이 밀이나  보리와 비슷해서 이삭이 패기 전에는 식별이 어렵습니다. 잘못 먹을 경우 설사와 구토, 심하면 목숨이 위험 합니다. 두가지 씨앗이 뿌려 졌으니, 제대로 수확 하기가 어려운 상황이 됩니다. 

 

26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26 When the wheat sprouted and formed heads, then the weeds also appeared.

  열매로 그 나무나 씨앗을 알 수 있습니다. 결실의 시기 때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게 됩니다.이 결실의 시기를 영적으로 최후 심판이라고 고 하는 마지막 추수기 이전 까지의 기간입니다. 이 시기에 악의 세력과 죄악이 최절정에  달하는 시기입니다.  빛의 자녀에게 이 때는 고난의  시기이고, 신앙의 시련을 통과하는 때입니다. 그렇지만, 이를 끝까지 견디는 자에게는 의의 면류관과 영생이 주어집니다 

 

27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27 "The owner's servants came to him and said, 'Sir, didn't you sow good seed in your field? Where then did the weeds come from?'

12제자들(종들)은 가라지가 생긴 이유를 모르나 그 집 ’주인’이신 하나님은 원수들이 한 일을 즉시 아십니다

  예수님을 ‘주여’[퀴리에] 라고 제자들이 부릅니다. 바리새인. 서기관등의 유대 지도층은  ‘선생’이라고 불렀습니다. 제자들과 예수님이 메시야 이심을 믿고 고백하는 사람들은 ‘주’라고 불렀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대신 감당하시는 대속자이시며 구원자이시니 우리가 그 분을 부를 호칭은 당연히 랍비가 아니라 ‘퀴리오스’ (주님) 입니다. 

 

28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28 " 'An enemy did this,' he replied. "The servants asked him, 'Do you want us to go and pull them up?'

  ‘원수’는 ‘미움’, ‘증오’ 에서 파생된 말로 원수의 역할을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들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부정하는 자이고 예수가 다시 오실 때까지 성도를 미혹하고 박해하는 적그리스도입니다.

  종들은 가라지를 지금 당장 모두 뽑아버리고 싶어 성급합니다. 주인은 주수의 때 [카이로스]를 알고 있으나 경솔한 종들은 그것을 모릅니다.

 

29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29 " 'No,' he answered, 'because while you are pulling the weeds, you may root up the wheat with them.

  ‘가만두라’는 그대로 가만두고 지켜보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이 세상 악의 세력에 대한 주인의 지혜롭고 여유있는 태도입니다. 이것이 악을 그대로 방치하거나 악을 근절을 아예 포기 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악행을 허락하시는 경우는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더해지기 위한 도구로 사단을 이용하실때 뿐입니다. (욥 2:4-7, 눅13:16).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에서 곡식 하나하나에 대한 주님의 애정과 염려를 볼수 있습니다. 가라지의 뿌리는 일반 곡식보다 더 강하고 깊이 들어가있으니, 가라지를 뽑다가 약한 곡식이 함께 뽑힙니다. 이를 염려하신 것입니다.

 

30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30 Let both grow together until the harvest. At that time I will tell the harvesters: First collect the weeds and tie them in bundles to be burned; then gather the wheat and bring it into my barn.' "

  추수는 마지막 심판을 비유한 것입니다. 심판이 행해지는 종말의 시기는 세상의 끝이라는 시간적 의미와, 성취 완성의 의미가 내포됩니다. 세상에서의 인간 삶은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끝나버리고 최후의 심판으로 악한자는 영원히 멸망할 곳에 가게 됩니다. 의인은 기쁨과 평화가 가득한 하나님 나라에 영원히 살게 될것입니다.

  주인은 가라지를 알곡과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두라’고 합니다. 이것은 주인의 주권적 명령입니다. 종들이 관여할 소관이 아닙니다. 세상 교회 안에도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있습니다. 박해를 받던 식에, 가라지를 뽑고자 하는 시도가 초대 기독교 교회에 여러번 있었습니다. 

성 어거스틴은 이에 대해 명확히 해석해주었습니다. “교회는 완전히 순수하고 깨끗한 사람들만이 모이는 완벽한 곳이 아니다. 그러니 순수하지 못한 자들을 함부로 제거해서 교회가 분리되어서는 안된다” 라고했습니다.  교회는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을 토대로 세워진 하나의 거룩한 몸입니다. 세상 교회는 천국이 아니니 세상 끝날 까지 알곡과 가라지, 의인과 악인의 복합체로 존속하게 될 것입니다.

  추수날 가라지를 먼저 단으로 묶어 불사르는 것은 독특한 방식입니다,. 이는 재림하신 예수님께서 그의 대적 마귀의 우두머리를 먼저 꺼지지 않는 불에 넣고자 결박하는 것으로 부터 당신의 사역을 시작하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죄악이 완전히 도말되는 것에서 완성될 것입니다. 

  ‘곶간’은 하늘에 예비해두신 하나님의 집으로 의인된 성도들만이 들어가기를 허락받는 안전한 처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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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3장:31-35

31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31 He told them another parable: 'The kingdom of heaven is like a mustard seed, which a man took and planted in his field.

  겨자는 배추과의 일년생 초본으로 씨가 많고 향기로워 양념과 약재로 사용되고 잎과 줄기도 식용으로 이용합니다. 겨자씨[시나피]는 매우 작은 것이지만, 생장력이 좋아 보통 1미터로 크나, 팔레스틴 지방에서는  간혹 3미터로 자라서 마치 나무처럼 무성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겨자씨를 비유로 드신 이유가 있습니다. 겨자씨가 매우 작아서 사람들 눈에 드러나지 않게 은밀하게 성장해 가는 것처럼 천국은 노출되지 않고 조용히 성장합니다. 겨자씨가 아주 작고 미약하듯이 천국도 지금 미약해 보이나 나중은 창대할 것입니다. 겨자씨가 놀랍게 변화하듯이 천국에 참여하는 이들의 아주 작은 믿음도 놀랍게 변화될 것입니다 (마 17:20). 예수님의 사역으로 조용히 시작된 교회는 살아있는 씨앗처럼, 12제자 -120문도에 의해 발전되어 현재 온 인류를 구원시킬 큰 나무가 되었습니다.

 

32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32 Though it is the smallest of all your seeds, yet when it grows, it is the largest of garden plants and becomes a tree, so that the birds of the air come and perch in its branches."

  ‘공중의 새’는 영적으로 해석하면, 세계 각처에 사는 사람들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고통에 지쳐 평안과 안식을 갈망하며 쉴곳을 찾는 인생들은 생명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과 안식을 얻게 됩니다. 이 새들은 겨자 가지 속에, 깃들어서 영속적인 거처를 마련합니다. 

 

33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33 He told them still another parable: 'The kingdom of heaven is like yeast that a woman took and mixed into a large amount of flour until it worked all through the dough.'

  누룩, 효모 (yeast)는 성경에서 보통 교만이나, 죄된 욕망( 고전 5:6) 혹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적하던, 대적자의 가르침 안에 있는 부패하고 썩은 요소 (막 8:15, 눅 12:1)를 말합니다.  그러나 본문 예수님의 비유는 부정, 긍정의 의미와 무관합니다. 단지 그런 결과를 낳는 놀라운 변화력과 정복력을 말합니다. 적은 양의 누룩이 가루 서말을 (가족 10명의 하루 세끼 분량) 모두 부풀어 오르게 하듯이, 보잘것 없이 시작된 천국의 복음은 세상 곳곳을 조용히 정복해 들어갈 것입니다.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죄된 욕망에 묶인 수 많은 사람들을 해방시킬 것입니다. 

 

34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34 Jesus spoke all these things to the crowd in parables; he did not say anything to them without using a parable.

  이 말은 예수님께서 비유가 아니면. 말을 안하셨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보면, 그분께서 하신 모든 말이 비유는 아니었습니다.

본문은 단지 그날은 ‘천국’을 이해 시키고자 특별히 비유로만 말씀하셨다는 의미입니다.

 

35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35 So was fulfilled what was spoken through the prophet: 'I will open my mouth in parables, I will utter things hidden since the creation of the world.'

 ‘ 창세부터’는 ‘세상’(코스모스)의 기초가 놓여지던 때’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감추인 것들’ 혹은 ‘옛 비밀한 말’(시 78:2)은 인류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의로우신 행위입니다. 과거의 사건들 속에 있는 하나님의 크고 깊은 영적 가르침입니다.  이 비밀들이, 이제 예수님의 가르침과, 기적과,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은 비유를 통해서 바리새인들, 대제사장들, 서기관들에게는 숨겨진 하나님 나라의 도래 라는 ‘시대’[카이로스]의 비밀을 군중에게 밝히고 계시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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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3장 :36-43

36 이에 예수께서 무리를 떠나사 집에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밭의 가라지의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소서

36 Then he left the crowd and went into the house. His disciples came to him and said, 'Explain to us the parable of the weeds in the field.'

  예수님은 들을 귀와 볼 눈을 갖지 못한 많은 무리들을 집으로 돌려보내시고, 여러 제자들을 데리고 앞서 떠났던 집으로 (13:1) 다시 돌아오신 장면입니다.  36절 이후의 여러 비유들 (보화, 진주, 그물, 서기관)의 청중은 제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천국도래에 대해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제자들을 가르치십니다. 

  ‘설명하여 주소서’ [디아사페손] 은’뚫다’, ‘통하다’의 의미가 있는 전치사 [디아]와 ‘맑은’, ‘깨끗한’의 의미가 있는 [사페스]의 합성어로 ‘철저히 말하다’, ,’분명히 가르치다’, ’밝히 말하다’ 는 의미입니다 신령한 말씀은 영의 도움으로만 바르게 이해됩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겸손하게 열정적으로 진리를 알고자 하는 이들에게 기꺼이 진리를 가르쳐주십니다.  

 

37 대답하여 이르시되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37 He answered, 'The one who sowed the good seed is the Son of Man.

  인자(the Son of Man)는 주제에 따라 1)종말의 날에 영광가운데 임재하실 묵시적인 의미의 인자, 2) 고난 받다가 인류를 대신해 죽어가는 인자, 3) 현재 이세상 안에서, 자신이 위탁받은 사명을 수행하는 인자으로 분류해 볼수 있습니다. (참조, 누가 5장)

 

38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38 The field is the world, and the good seed stands for the sons of the kingdom. The weeds are the sons of the evil one,

  ‘밭은 세상이요’ 이표현은 하나님나라의 복음이 이스라엘을 넘어 온 세상에 미칠것을 암시합니다. ‘밭’과 ‘세상’이라는 명사 앞에 동일한 관사[호]가 붙어 있어서 서로 위치를 바꾸어도 의미가 동일합니다. 

  ‘천국의 아들들’은 히브리적 표현으로 그들이 천국에 어울리는 속성을 지닌 자들이라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천국에 어울리는 속성은신령 (神靈)과 진정(眞情)으로 하나님과 그 이웃을 사랑할 줄 아는 성품이며 성령의 여러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믿음과  인내를 소유한 것을 가리킵니다. 

  ‘악한 자의 아들들’은 악한자에 의해 세상에 흩뿌려진 자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멸망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자들이며 그 나라 특성에 맞게 사악한 속성을 지닌 자들입니다. 그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좋아하는 사악한 근 성을 가진 자들입니다. 그들은 성도들을 유혹하여 하나님의 복음과 율법의 길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39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39 and the enemy who sows them is the devil. The harvest is the end of the age, and the harvesters are angels.

  ‘원수’, ‘대적자’를 뜻하는 [에크드로스]는 적의, 불화, 이간, 분리를 가리키는 [크드라]에서 유래한 말로 ‘분리되어 나온 자’를 의미합니다. 마귀를 말하는[디아볼로스]는 ‘사이에’를 의미하는 [디아]와 밀어넣다, 끼어 넣다, 던지다의 의미인 [발로]의 합성어에서 나온 말로 ‘중상하는 자’, ‘비방 거짓고소하는자’, ‘밀고자’의 의미입니다. 원수는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가 버린자로 악의 기원과 그 정체성을 나타내며, 마귀라는 말은 하나님 앞에서 사람을 비방하는 행위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불화를 조성하는 그들의 사악한 행위(work)를 드러내 주는 말입니다. 

  ‘세상 끝’ 은 원어에서 ‘ 이 시대의 완료(결말)를 의미합니다. 결국 이때가 되면, 현존하는 이 시간들이 완료되고 동시에 영광스런 새시대가 도래하게 될 것입니다. 곧 예수님의 재림의 때를 암시합니다.

  천사들은 구약에서 주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창 18:2-15, 출 3:2, 삿13:6-21)을 하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 특히 예수님이 말하신 천사의 중대한 역할과 책임은, 종말에 인자와 함께 세상에 와서 의인과 악인을 심팜하여 악인을 멸망의 장소로 인도해 여원히 파멸하게 하는 것입니다.(마 24:31, 막 13:27, 계 14:17-20)

 

40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 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40 'As the weeds are pulled up and burned in the fire, so it will be at the end of the age.

  세상 끝날 종말에는 가라지 (악한 자들)의 묶음이 멸망의 불에 던져진다는 것입니다. (계 14:9-11) 이는 단지 상징적, 교훈적 차원의 형벌이 아니라 영원한 내세를 가늠하는 존재론적인 심판입니다. (42절)

 

41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41 The Son of Man will send out his angels, and they will weed out of his kingdom everything that causes sin and all who do evil.

  ‘앞, 미리, 전에’를 의미하는 [아포]와 ‘차례로 놓다, 준비하다’ 라는 의미인 [스텔로]의 합성어인 [아포스톨로스]는 특별히 예수께서 선택하신 12제자을 말합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본문의 천사들도 예수님의 보내심을 받은 자로 그의 명령을 수행하는 존재입니다.

  넘어지게 하는 것, 불법을 행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입니다 (살후 2:3-4) 이는 그가 적그리스도 라는 의미입니다.

 

42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42 They will throw them into the fiery furnace, where there will be weeping and gnashing of teeth.

  풀무불은 화덕, 불을 비피는 아궁이를 말합니다. 하늘의 심판을 받는 사람들이 무서운 불로 영원히 형벌을 받는 장소입니다.

 

43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43 Then the righteous will shine like the sun in the kingdom of their Father. He who has ears, let him hear.

  ‘의인들’은 복음의 빛을 수용한 모든 사람을 가리킵니다. 이 의인들은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를 ‘아버지의 나라 ‘ 곧 영원한 본향으로 삼고 있는 자들입니다. 

 ‘해와 같이 빛나리라’는 의인들의 빛남은 마치 어둠 가운데 있는 모든 사물을 밝히 보게하는 등불처럼 빛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분명히 하나님 나라의 시민들의 일반적인 모습 일 것입니다. 그 나라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로 모든 만물이 다 해처럼 빛날 것이며 하나님으로 부터 창조 받던 처음 모습 그대로의 아름 다움을 되찾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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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3장 :44-46

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44 'The kingdom of heaven is like treasure hidden in a field. When a man found it, he hid it again, and then in his joy went and sold all he had and bought that field.

  보화가 감추어진 이유는 1)진리를 모르는 무가치한 사람들에게 발견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고,  2) 진리를 찾는 사람들의 근면성을 시험하기 위해  감추어져 있습니다. 부지런히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만이 천국복음의 진리를 발견할수 있습니다. 3) 보화가 밭에 감추어진 이유는 그것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의 인내를 시험하기 위해서입니다.  천국복음 의 진리는 그것을 찾기까지 계속 노력할 귀중한 가치가 있습니다.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해서 불을 찾아나서지 않는 자에게 보물이 발견되지 않습니다. 진리에 무감각하여 쾌락만  따라가는 자에게는 발견되지 않습니다.

  ‘돌아가서 …다 팔아…사느니라 ‘ 이 세동사의 시제는 모두 현재형으로 보화를 발견한 사람의 즉각적이고 단호한 행동을 보여줍니다. 절대적인 가치 앞에 상대적 가치를 단호하게 거부할 줄 아는 용기 있는 추구자의 모습입니다. 성경에서 무엇을 사는 방법은 (1)돈 없이 값없이 사는 것과 (사 55:1, 계 21:6) 2), (2)본문처럼 모든 소유를 다 투자해서 사는 것이 있습니다. 이는 얻고자하는 것에 비해 이미 가지고 있던 것들이 무익하거나 해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빌 3:7,8)

 

45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45 'Again, the kingdom of heaven is like a merchant looking for fine pearls.

  진주는 그 당시 페르시아만과 인도양 등에서 채취한 것이 가장 고급품으로 여겨 졌습니다. 언급된 상인은 ‘좋은 진주’를 구하고 있습니다. 즉, 흠이 없는 고가품을 진주를 구하고 있습니다.

 ‘ 장사’[엠포로스]는 여러곳으로 여행하며 장사하는 부유한 도매상인을 말합니다. 그는 우연히 보물을 발견한 농부와 다르게 , 진주가 나올 만한 곳을 찾아 다닙니다. 그는 진리가 무엇인지 알고자, 그것이 어디에 있든지, 최고의 가치인 진리를 찾아다니는 구도자입니다.

 

46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46 When he found one of great value, he went away and sold everything he had and bought it.

  상인은 자신이 목적하고 소망하던 것보다 더 좋은 진주를 만났습니다. 이것이 바로 진리를 위해 자신의 전 의지를 다 하는 자에게 내리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과 죄된 인간 사이에 단절된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한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피값은 값을 따질수 없는 크고 귀한 것입니다. ‘극히 값진 진주’와 비교될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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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3장 :47-58

47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47 'Once again, the kingdom of heaven is like a net that was let down into the lake and caught all kinds of fish.

 갈릴리 바다에는 22종 이상의 물고기가 있습니다. 이런 다양한 물고기는 하나님 나라에 참여할 수 있는 자들이 여러 인종과 민족이 포함될 가능성을 암시합니다. 

  ‘각종 물고기’는 좋은 물고기와 나쁜 물고기 모두를 말하고, 의인과 악인이 함께 살아가는 상태를 보여줍니다. 욥기 19:6, 시 66:11절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그 그물속에 들게 하신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그물’은 예수와 그의 제자들에 의해 세계 도처에 복음이 확산되는 것과, 그 확산의 결과로 만들어지는 신앙공동체인 교회를 상징합니다. 그 교회는 종말의 심판 까지 참 성도와 거짓 성도가 함께 존재할 것입니다. 성경에서 ‘바다’는 영적 혼미 (stupefaction) 상태에 처한 세상 족속을 상징합니다. (단 7:3, 눅 21:25) 

 

48 못된 것은 내버리느니라

48 When it was full, the fishermen pulled it up on the shore. Then they sat down and collected the good fish in baskets, but threw the bad away.

물가로 끌어내어진 고기들은 그릇에 담기든지 버려지든지 선별되는 과정을 거칩니다. 종말에 악인들은 영원한 형벌의 처소로 분리되고,  성도들은 다시 오시는 그리스도의 심판과 천년 통치를 경험하게 됩니다. 

 

49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 내어  

49 This is how it will be at the end of the age. The angels will come and separate the wicked from the righteous

  ‘갈라내어’ [아포리우신]은 완전한 격리를 암시하는 용어입니다. 심판의 날 의인과 악인에 대한 분리 작업이 이루어 질 것입니다.

 

50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리라

50 and throw them into the fiery furnace, where there will be weeping and gnashing of teeth.

  심판의 날에 악인들은 영원한 형벌의 상황에 처할 것이라고 경고 하십니다.

 

51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 하시니 대답하되 그러하오이다

51 'Have you understood all these things?' Jesus asked. 'Yes,' they replied.

  제자들이 주님의 말씀을 다 이해하였다고 보기 어려우나 그들 스스로는 이해했다고 확신합니다. 어리석은 무리들 보다는 제자들이 더 많은 것을 이해 했을 것입니다.

 

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52 He said to them, 'Therefore every teacher of the law who has been instructed about the kingdom of heaven is like the owner of a house who brings out of his storeroom new treasures as well as old.'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은 서기관의 역할인 율법과 경전에 대한 해석과 율법 교육을 하는 것 뿐 아니라, 하늘나라의 비밀을 알고 그에 준하여 살아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를 말합니다. 

  ‘ 새것과 옛것’은 전에는 알려지지 않았고, 깨닫지 못했던 것이나, 예수님께서 새롭게 계시하신 새 진리가 새 것이고, 구약의 율법은 옛것이라 할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시는 오직 하나이고 그 계시의 초점은 ‘옛 것’을 성취하여 새롭게 하는 ‘새 것’에 있습니다.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은 이러한 사실에 대해 깊은 통찰력과 새롭게 변화된 시각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꺼내어 옵니다.

  ‘곳간’은 진리가 전수되고 보관되어 있는 곳으로 구약과 신약을 모두 포함하는 하나님의 말씀과 구원 사건의 역사가 쌓인 마음의 창고 입니다.  집주인 같은 주의 제자들은, 주께서 맡기신 천국 도래와 관련된 비밀을 심령 깊숙한 곳에서 꺼내어서, 사람들에게 계속 제공하고 그 의미를 가르쳐주어야 됩니다. 

 

53 예수께서 이 모든 비유를 마치신 후에 그 곳을 떠나서

53 When Jesus had finished these parables, he moved on from there.

54 고향으로 돌아가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그들이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냐

54 Coming to his hometown, he began teaching the people in their synagogue, and they were amazed. 'Where did this man get this wisdom and these miraculous powers?' they asked.

  예수님의 공생애중에 세차례의 갈릴리 전도 사역이 있었습니다. 본문은 2차갈릴리 사역을 종결하기 위해 , 고향인 나사렛에 귀환하시는 모습입니다. (눅 4:16) 이때부터 예수님은 더 적극적으로 말씀 전파 사역을 하셨고 , 유대 지도자들의 반감이 고조되기 시작합니다. 예수님과 유대 교권주의자들의 대립은 고향 나사렛에서 갈등이 표면화 됩니다. 

  ‘그들의 회당’ 그를 모함하고 해치려는 무리들이 공식적으로 모이는 유대교 회당에서 그들을 가르치십니다.  예수님은 어디를 가든지 가르치시고 (teaching), 복음을 전파하시고 (preaching),  병을 고치려고(healing) 최선을 다 하셨습니다. 

  유대교 회당에 모인 그들은 그가 진리를 가르치는 것과 기적을 행하는 힘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니 바알세블에게 있는 것인지를 말합니다. 그들도 예수님의 능력이 놀라운 것이라 생각하나, 예수님의 신적 권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55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어머니는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55 "Isn't this the carpenter's son? Isn't his mother's name Mary, and aren't his brothers James, Joseph, Simon and Judas?

  예수님은 실제로 목수 였습니다. (막 6:3) 당시 유대 관습에는 자녀들은 대부분 아버지의 직업을 계승했습니다. 당시 유대 주택은 대부분 흙벽돌로 건축되었으니 ‘목수’란 넓은 의미의 건축 기술자 혹은 목공 기술자입니다. 본문의 ‘목수’ 라는 단어 앞에 정관사 [투]가 사용되므로 , 나사렛 동네에는 오직 한 사람 혹은, 한 집안의 목수가 존재 함을 의미합니다. 

  ‘그 형제들’중에는 ‘야고보서의 저자 야고보와 , 유다서의 저자 유다가 있습니다. 다른 형제들의 신분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때만 해도 그들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지 않았습니다. (요 7:5)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부활 승천 이후 그들의 믿음이 온전해진 것 같습니다. (행 1:14)

 

56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런즉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냐 하고

56 Aren't all his sisters with us? Where then did this man get all these things?"

  예수님의 형제와 모친은 나사렛에서 가버나움으로 이주한 것 같고 (4:13), 그의 누이들은 결혼하여 나사렛에 계속 정착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막 6:3)

 

57 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하시고

57 And they took offense at him. But Jesus said to them, 'Only in his hometown and in his own house is a prophet without honor.'

  그들은 예수님에 대해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고, 예수님을 용납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고향 방문 때마다, 거절되고 배척 당합니다 (묵 4:29)

 

58 그들이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하지 아니하시니라

58 And he did not do many miracles there because of their lack of faith.

  선지자 예레미야도 고향에서 배척 당했습니다. “너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언하지 말라, 두렵건대 우리 손에 죽을 까 하노라 (렘11:21) 예수님은 나사렛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가르치고 기적을 베푸셨으나, 예수님에 대한 불신과 시기가 지나치게 강한, 고향에서는 기적을 베풀지 않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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