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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요한복음

요한복음1장 :11-13

by 갈렙과 함께 2024. 6. 12.

요한복음1장 :11-13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John 1: 11-13

11 He came to that which was his own, but his own did not receive him.

12 Yet to all who received him, to those who believed in his name, he gave the right to become children of God-

13 children born not of natural descent, nor of human decision or a husband's will, but born of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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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1장 :11-13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1 He came to that which was his own, but his own did not receive him.

  ‘자기땅에’는 ‘ 자기 소유의 거처’ 라는 의미입니다. 이 세상은 말씀이신 그리스도의 소유이며, 거처입니다. 세상이 타락되었고 사단의 세력이 왕성할지라도 세상의 궁극적 소유권은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자기 백성’

이 세상은 본래 그리스도의 소유에 속하는 것이니, 선민 이스라엘도 당연히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함을 받았고 (창 18:19, 신 32:9), 이 세상의 죄악을 감당하고 사단의 권세와 싸울 제사장 나라가 되는 특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타락한 세상 속에서 이스라엘은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배척하고 심지어 십자가에 처형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그리스도의 소유’라는 영광스런 특권을 상실했습니다. 이런 ‘소유’ 의 관점에서 본다면, 선민 이스라엘의 권리는 예수의 제자들 (13:1)에게로 넘어간 것입니다. 이 영광스런 특권은 영생과 함께 영원히 지속될 것입니다. (계 20:6) 

 

  ‘그리스도의 소유’ 이므로 성도들은 로마제국의 박해에서도 강건하게 버틸수 있었습니다. 현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도 물신주의와 세속주의 속에서 흔들리지 말고 복음의 군사로서 자신이  ‘그리스도의 소유’라는 확신과 긍지로 살아가야 됩니다.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다’ [파랄람바노] 은 집단적 공동체적 영접을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개인적인 영접을 의미할 때는  [람바노]라는 단어가 사용됩니다. 여기서는 [파랄람바노]를 사용하여 예수님이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환영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탄식하셨습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내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 (마 23:27) 예수님은, 스스로를 선민이라 하는 이스라엘에게 ‘마귀의 자식’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8:44)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2 Yet to all who received him, to those who believed in his name, he gave the right to become children of God-  

 

  ‘영접하는 자’

‘영접하는 자’는 [람비노] 개인적으로 영접한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는 구원이 하나님과 개인과의 단독적 관계에 의해 결정됨을 말합니다.

‘영접한다’는 것은 단순히 ‘신뢰하다 (trust)라는 의미보다 더 강력한 표현으로, 한 개인이 그리스도를 전 인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그리스도를 ‘이름’이라고 지칭한 것은 히브리적 전통에 입각한 아람어적 표현입니다.  당시는 아람어 문화권과 헬라어 문화권의 양대 문화 속에 살아가고 있었기에 이런 표현을 했습니다. 

 

‘이름’을 믿는다는 것은 ‘그 이름을 지닌 사람’을 믿는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사용된 ‘믿는다’는 ‘그리스도를 영접한 이후로 끊임없이 유지되는 강한 신앙’ 을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그 이름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그의 구원의 십자가 능력과 그의 영원성, 그의 인격성, 그의 신성을 믿는다는 사실 그 이상의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각각의 개개인이 자신의 구주로 영접한다는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이는 ‘어둠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 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이것이 가능해 집니다.  여기에 사용된 ‘되는’ 이라는 헬라어 [게네스다이]는 [기오미이] 의 부정 과거 중간태로서  ‘과거에 존재하지 않던 것이 생겨나서 영원히 계속된다’ 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어느 한 시점, 역사적 시점에서 신분의 변화가 일어나서, 초역사적 시점까지 그 영역이 열려져 있다는 의미입니다.

 

‘자녀’는 ‘상속자’라는 의미가 포함됩니다. 죄악된 세상에서 구원받은 성도들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진정한 자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변화는 오직 중생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3:3,벧전 1:3) 그리스도를 믿고 중생하여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권세’를 부여 받는 것입니다.

 

‘권세’ [여수시아]는 (1)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능 (눅 12:5, 골 1:13) (2)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게 부여해 주신 절대적인 권한과 힘 ( 마 28:18, 막 2:10) 을 나타냅니다. 

성도는 이런 권세를 그리스도께로부터 받게 됩니다. (고후 10:8, 계22:14) . 그러므로, 이런 권세를 부여 받았다는 것은 죄와 어둠의 세상에서 자유롭게 됨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자유로운 권능은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사역에만 사용되어야 됩니다. (고전 9: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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