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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요한복음

요한복음 16장: 20-22

by 갈렙과 함께 2024. 10. 18.

요한복음 16장: 20-22

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21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22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John 16: 20-22

20 I tell you the truth, you will weep and mourn while the world rejoices. You will grieve, but your grief will turn to joy.

21 A woman giving birth to a child has pain because her time has come; but when her baby is born she forgets the anguish because of her joy that a child is born into the world.

22 So with you: Now is your time of grief, but I will see you again and you will rejoice, and no one will take away your 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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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6장: 20-22

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20 I tell you the truth, you will weep and mourn while the world rejoices. You will grieve, but your grief will turn to joy.

 

 ‘애통하겠으나’의 ‘애통하다 [드레네오] 라는 동사는 ‘애곡하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울다’ [크라이오]와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제자들에게 큰 슬픔이 될것을 강조합니다. 당신의 죽음 이후에 제자들이 크게 슬퍼하고 마음의 동요가 일어나 각자 원래 살던 곳으로 흩어지게 될것을 아시고, 미리 이 말씀을 해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심으로 추후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다음에, 그 말씀이 사실이었음을 제자들이 깨닫아 알게 되고, 이로써 그들에게 증거가 되도록 하고자 이 ‘슬픔’을 강조하셨습니다.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는 것은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이 제자들에게 처음에는 슬픔의 원인이 되지만, 나중에는 기쁨의 근원이 될 것입니다. 십자가는 부활을 믿는 자들에게는 예수님과의 일시적인 이별의 슬픔이지만, 결국은 십자가는  기쁨으로 변하여 영광의 대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21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21 A woman giving birth to a child has pain because her time has come; but when her baby is born she forgets the anguish because of her joy that a child is born into the world.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해산하는 여인에게 비유하십니다. 해산하는 여인은 출산의 고통을 겪고 난 다음에야, 아기가 태어나는 기쁨을 갖게 됩니다. ‘아기를 낳으면’ 이라는 구절은 [호탄] (Whenever)이라는 부정의 시상절 (indefinite temporal clause)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는 ‘해산을 할 때 마다’라는 의미가 되므로, 출산의 고통 뒤에는 반드시 필연적으로 기쁨이 따른다는 의미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슬픔과 위험에 처한 이스라엘을 표현할 때 해산하는 여인의 진통에 비유했습니다 (사 26:17-19, 렘 4:31, 호 13:13-15). 유대인들은 메시야의 새 시대가 오면 이세상이 멸망하는 고통의 날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고 (사 13:6), 후기 유대교에서는 이 수난기를 메시야가 도래하기 위한 해산의 고통이라고 교리화 시켰습니다 (c.k. Barrett). 

  예수님은 구약의 이런 예언을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적용하여 종말론적인 언어로 표현하심으로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부활 사건을 미리 바라보고 알려주십니다.

 ‘아기’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징하고, 제자들이 고통을 겪고 난뒤에 만나게 될 새로운 이스라엘, 즉 그리스도의 교회를 상징합니다.

 

 22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22 So with you: Now is your time of grief, but I will see you again and you will rejoice, and no one will take away your joy.

 

  16절에서 19절은 ‘나를 보리라’ 라는 부활의 사상을 나타내고 있고 예수님의 부활과 성령의 강림에 대해 언급되었습니다. 본절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는 예수님께서 직접 제자들을 보신다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활후 40일간 지상에서 계실것이고, 제자들에게 당신의 영광스런 부활을 나타나실 것이라고 미리 알려주시는 말씀입니다. 동시에, 제자들이 어떤 상황에 있더라도 반드시 그들을 찾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마음이 기쁠 것이요’는 성도가 얻게 될 마음의 기쁨에 대해서 성경에는 두가지로 구분되어 기록되어 있습니다. 

(1)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한 뒤에 느끼는 기쁨

구약에서 다윗은 수많은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자신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시 16:8-11, 21:1, 6, 21). 선지자들도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바라보고 기뻐했고 (합 3:18),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뻐하라고 권했습니다 (사 66:10, 14).

(2) 성령 충만함을 받은 뒤에 느끼는 기쁨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했을 때, 그들의 삶은 달라졌습니다. 그들은 슬픔과 불안, 낙망 가운데 있다가 성령의 임재를 경험한 뒤, 기쁨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행 2:46). 바울은 성령의 열매 중에서 사랑 다음으로 ‘희락’, 즉 ‘기쁨’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갈 5:22). 박해와 고난 가운데에서 느낀 영원한 기쁨입니다. 

 

본절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 기쁨은, 이 두 종류의 기쁨을 모두 포함합니다.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목격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확신하게 되고 기쁨을 얻게 됩니다 (눅 24:52). 예수님께서 승천하여, 하나님의 보좌 우편으로 돌아가신 뒤에도 성령의 강림으로 인한 그들의기쁨은 여전히 지속되었습니다.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는 말은 제자들이 슬픔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제자들이 받게  될 기쁨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세상 사람들이 느끼는 기쁨과 이 기쁨은 구별되는 것이고 세상이 이것을 뺏어 갈수 없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십자가의 의미를 이해하고 지금까지는 알지 못했던 큰 기쁨을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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